“재주껏 불법 선거운동이라도 하라는 건지 뭔지….”
17대 총선이 8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정치신인들은 제대로 된 명함조차 돌릴 수 없다. 사무실에도 1㎡ 이상의 간판은 달지 못한다. 그나마 이름 석자라도 새길라 치면 불법이다.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이 늦어지면서 정치신인들은 한숨만 늘어가고 있다. 때때로 `불법선거운동이라도 해버려`하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조급한 마음에 실제로 불법을 저지르기도 한다. 중앙선관위는 28일 지난해 10월 17대 총선관련 선거법 위반행위 단속을 시작한 이후 지난 15일까지 총 1,955건을 적발해 49건 고발, 27건 수사의뢰, 670건 경고, 1,204건 주의조치, 5건 검찰 이첩을 했다고 밝혔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적발사례 대부분이 정치신인들이었다.
서울 은평을에서 출마를 준비중인 최창환(42) 열린우리당 부대변인. 그는 매일 새벽6시부터 자정을 넘겨서까지 강행군을 하고 있다. 의정보고니 당원교육이니 하는 명분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현역의원들과는 달리 그저 열심히 발품을 판다. 지난달 중순 찍은 명함 1만장이 동나 최근 추가 인쇄를 했다. 매일 300명 이상의 유권자와 악수를 한 셈이다. 그래도 그는 현직만을 써 넣을 수 있는 명함에 `당 부대변인`이라는 직함이라도 새겨 넣어 다행이다. 그는 “국회의원들의 팔이 안으로 굽어서 위헌적인 불평등 선거법을 고집하고 있다”며 “정치신인들은 숨쉬기운동 이외의 어떤 선거운동도 할 수 없다”고 푸념했다.
경기 고양 일산을 지역으로 민주당에 공천신청을 한 박태우(40) 일산경제연구소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명함 하나 들고 새벽부터 약수터니 경로당이니 찾아 다니며 하루에 수백명과 인사를 하지만 “잘 부탁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선거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정치신인들은 유인물 하나 돌릴 수 없어 얼굴 알리는 방법이 모두 차단돼 있다”며 “국회에서 빨리 선거법 협상을 끝내 오는 2월 15일부터라도 제약을 풀어줘야 남은 60일 동안 어떻게라도 해 볼 수 있을 텐데…”라고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 마포갑에 공천신청을 낸 이태용(43) 국회의장 정무수석은 요즘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다른 후보들처럼 여기저기 유권자들을 찾아 다니며 명함을 건네고 악수를 해 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천 받거든 얘기하자”는 싸늘한 반응 뿐이었기 때문. 이 수석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상대로 나름대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너무 많다”며 “선거법 협상도 협상이지만 빨리 공천자가 확정돼야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달 15일이 공직자 사퇴시한인데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알리기 위해 갖가지 묘수를 짜내고 있는 정치신인들도 있다.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인천 부평갑 지역구에 출마 준비중인 홍영표(46)씨는 최근 동호회에 가입,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게 됐다.`얼굴 알리기`를 위해서다. 경남 밀양ㆍ창녕에서 출마할 계획인 한나라당 조해진(40)씨도 조기축구회에 참여해 `한 게임` 뛰고 나면 자연스럽게 `내편`이 된다고 말한다. 그는 다음달 열릴 지역 마라톤 대회에도 일찌감치 참가 신청을 해뒀다. 등산로나 약수터, 전철역 등 고전적 장소뿐만 아니라 최근엔 찜질방이나 PC방도 신인들에겐 얼굴 알리기에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경기 의정부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준비중인 김남성(39)씨는 PC방을 돌며 스타크래프트나 리니지 게임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임동석기자 freud@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