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히든챔피언의 길


산업혁명은 인류의 삶 자체를 바꿔놓았다. 기계화·자동화를 통한 대량생산은 공장이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줬다. 가내수공업은 점차 사라졌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공장은 더 많은 제품을 찍어냈고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는 대기업도 등장했다. 대기업이 세상을 독차지하는 날도 머지않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다. 중소기업은 여전히 각 나라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경제활동 인구의 절대다수도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대기업이 아무리 커도 모든 영역을 다 할 수는 없다. 모든 국민이 몇몇 대기업을 위해 일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거기다 '남과 다른 개성'도 중요해졌다. 결국 사회의 다양성과 원활한 경제활동을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한국도 중소기업을 중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언제나 크다.

그렇다면 한국의 중소기업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고 정부는 어떻게 지원해야 할까.


과학기술인이자 기업을 이끄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중소기업의 목표가 단순히 대기업이 할 수 없는 것을 찾는 것만은 아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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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중소기업 강국인 독일을 보자. 독일은 유럽에서 산업혁명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았다. 당시 독일의 수공업자들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다. 도시로 가지 않았다. 대신 스스로 강점을 강화해 틈새시장을 노리는 방식으로 발전을 꾀했다. '기술력에 기반한 특화제품으로 고품질·고가격 시장에서 경쟁' '수출을 우선시하는 글로벌화' '지역별 클러스터를 통한 타기업과의 상호보완' 등의 원칙을 세워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지켜나간다.

현재 전세계 중소기업이 지향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한다. 독일 기업의 99.5%는 중소기업이고 이들이 법인세의 55%를 낸다. 독일에서는 중소기업을 '미텔슈탄트'라 부른다. '허리'에서 유래된 말로 독일 경제의 완벽한 허리 역할을 한다. 하지만 한국은 중소기업의 비중이 99%나 되지만 법인세 부담은 10%도 안 된다. 아주 영세하다는 방증이다.

독일의 성공은 2005년 헤르만 지몬 박사가 주창한 '히든챔피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기업, 매출액은 40억달러 이하지만 각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3위 또는 소속 대륙에서 1위인 기업'으로 정의했다. 지난해 히든챔피언 2,734개 중 독일 기업이 절반인 1,307개나 됐다. 한국은 20개 정도다. 100년 넘게 성장한 독일과 불과 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중소기업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독일의 정책이나 역사를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히든챔피언이 되는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소기업 진흥책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앞다퉈 중소기업의 과학기술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대기업은 도시에 창조경제 지원센터를 세우는 중이다.

뛰어났던 중소기업들이 약간의 도움으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이른바 '마중물 정책'의 결과들이다. 한국이 머지않아 히든챔피언의 메카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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