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재영의 남성학] 동성애

궁녀·환관 '對食'으로 욕구해소도

‘어려서부터 외모는 타고 났으니 꽃의 얼굴이고, 미인들이 사는 궁아전(宮娥殿) 안에서도 내가 빛이 되니, 어린 환관을 계단에서 만날 때마다 서로 엉겨 붙고, 손을 뻗어 그의 바짓가랑이를 더듬으나 잡히지 않네.’ 명나라 때 홍승(洪升)이 쓴 시에 나오는 구절로 성을 억압당한 궁녀와 환관 사이에는 이처럼 로맨스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 질 수 없었기에 환관들은 설경(舌耕)과 압구(狎具)를 이용했다. 설경은 입으로 하는 오럴섹스. 압구는 나무로 만든 인조 음경이다. 그에 따라 궁중에서는 불시에 소지품 검사를 했는데, 그때마다 압구와 춘화집이 한 무더기씩 수거되었다. 성욕은 있으나 이를 해소할 수 없었던 궁녀와 환관들은 정상적인 성행위를 할 수 없었기에 이들의 관계를 대식(對食)이라 했다. 즉, 서로 마주보며 밥을 먹는 관계라는 것인데 동성애를 뜻한다. 압구는 21세기 들어 질의 온도 변화를 통해 흥분 정도를 감지하여 작동을 조절해 주는 첨단 바이브레이터로 개량 되었지만 초기에는 딱딱한 나무 재질이라 사고가 빈번했으니, ‘야획편’이란 고서에 다음의 사건이 전해 온다. ‘근래 환관 하나가 압구를 교방의 어린 기생인 소창의 곡도(曲道ㆍ질)에 넣었는데 빠지지 않아 죽었다. 변상할 것을 문책하니, 인간세상의 해괴한 일이 어딘들 없겠는가.’ 아마 여성들의 기호(?)에 따라 압구의 크기나 두께를 점차 크게 만들다가 생긴 일일 터인데 궁녀들은 옥으로 만든 압구로 욕정을 해소하다 미끄러져 질 속에 빠지면 손목이 가는 어린 궁녀를 급히 불러 빼내었다고 한다. 압구는 고대 중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신라시대부터 이용되었는데 동성애나 자위용도는 물론, 신당에 걸어두고 아들 낳기를 빌었고 어촌에서는 풍어제(豊漁祭)에 제물로 쓰기도 했다. 또 마을에 돌림병이 돌면 급히 나무를 깎아 피신할 수 없는 처녀에게 주고 갔는데 자위로나마 욕구도 풀고 고통을 견뎌내라는 의미였다. 성은 두통이나 공포를 잊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현대의학에 의해 밝혀졌기 때문에 조상들의 이러한 풍속은 인간적이고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처녀가 죽으면 관속에 남근노리개를 넣어주기도 했는데, 이승에서 풀지 못한 욕망을 저승 가는 길에서나마 해소하라는 배려였던 것이다. 이처럼 남성의 음경은 생명을 잉태 시키는 영물이자 주술적 힘을 갖는 존재로 인식되었기에 원시시대부터 사람들은 크고 우람한 심벌을 소유하고자 했다.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개의 심줄을 이식하거나 벌에 쏘이는 원시적인 방법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절개술을 거쳐 내시경적 수술법까지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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