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3년 6월20일, 칠레 부근 해역. 영국 해군 센추리언호가 횡재를 만났다. 에스파냐의 보물선이 나타난 것. 영국 해군은 거칠 게 없었다.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이 한창일 때 적국의 함정을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었으니까. 겨우 두 시간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영국 해군의 1,000톤급 센추리언호는 자기보다 몸집이 큰 에스파냐 보물 운반선 코비동가호를 압도할 수 있었다. 승전의 결과는 엄청났다. 영국은 8펜스짜리 주화 131만개를 포함해 40만파운드의 노획전과를 올렸다. 역사상 세번째의 해상약탈 기록이다. 영국은 중국 광저우에 기항해 코비동가호 선체를 헐값에 넘기는 한편 금과 은 등 보물을 영국 본국에 실어보냈다. ‘꿩 먹고 알 먹고.’ 영국은 보이지 않는 수확도 건졌다. 해상시계, 즉 크로노미터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게 이날의 약탈이다. 바다에서 자기 배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해상시계를 처음 실험한 선박이 바로 센추리언호다. 여기서 의문이 나올 수 있다. ‘신사 중의 신사라고 불리는 영국 해군이 첨단과학을 동원해 해적질을 하다니?’ 그랬다. 영국에는 해군과 해적의 경계보다 눈앞의 국가 이익이 최우선이었다. 문제는 영국이 강해지고 난 뒤부터. 국제법에서 영국은 후발주자가 추격할 수 있는 길을 완전히 막아버렸다. 요즘도 그렇다. 영국이 ‘인도주의’를 내세우며 해적을 부인한 것도 부동의 강대국이 된 이후다. 분견함대 사령관의 이름을 따서 ‘엔슨의 약탈’이라고 불리는 이날의 해적행위는 영국이 신사와 해적을 오간 분기점이었던 셈이다. 오늘날에도 세계를 주름잡는 국가들은 자국의 해군을 ‘바다의 신사’라고 강조한다. 과연 그럴까. 진실이 이것보다 먼 곳에 있으면 좋겠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