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 5%를 위해 싸운다.’ 드라마 관계자가 들으면 비웃을 얘기다. 소위 ‘애국가 시청률’로 불리는 수치. 그러나 순수문화 프로그램에게 5%는 다가가기 힘든 높고도 험한 벽이다. 최근 KBS가 문화전문채널인 KBS코리아 운영권을 케이블PP 자회사인 ‘KBS스카이’로 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을 계기로 방송가에 문화 프로그램 현실에 대한 조용한 논란이 일고 있다. “보지도 않는 프로그램 만들지도 말라”는 극단적 입장이 엄연한 현실이지만, “가벼움만을 향해 한없이 질주할 순 없다”는 의견 역시 무시할 수만은 없다. 방송사에서 문화 프로그램 현실은 ‘푸대접’을 넘어선 ‘무대접’이다. 월~목 오후 11시 30분을 이른바 ‘문화존’으로 지정해 ‘TV문화지대’를 방영하고 있는 KBS 1TV가 그나마 문화 프로그램의 명목을 잇는 형편이다. MBC와 SBS는 그야말로 구색 맞추기 수준. MBC가 ‘즐거운 문화읽기’와 ‘수요예술무대’, SBS가 ‘문화가중계’와 ‘금요컬처 클럽’을 방영하지만 대부분 유명 공연의 녹화 프로그램인데다 평일 낮이나 심야시간대 편성으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오히려 유도하고 있다. 케이블에선 예술이 아예 ‘사라진’ 상태. 95년 케이블TV 출범 당시 코오롱이 운영했던 A&C 채널은 거듭되는 적자 속에 YTN으로 넘어가 지난해 연예전문채널 ‘YTN스타’로 변신했다. 4월 현재 방송위원회에 등록된 177개 채널 중 순수문화 채널은 단 한 개도 없다. 방송위원회가 지난해 7월 공익성 방송 의무전송 방안을 발표하며 순수문화예술을 공익채널로 고시했지만 1년여가 다 되도록 희망 사업자는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나마 유일하게 KBS 코리아가 문화채널임을 내세웠지만 운영권이 넘어간 이후에도 이를 지킬지는 의문이다. KBS는 “지금의 성격을 유지하는 대원칙을 갖고 있다”고 밝혔지만 유료방송 채널 특성상 상황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봄 개편에서 KBS코리아 간판프로그램인 ‘디지털 미술관’ ‘클래식 오디세이’ 등이 KBS 본 채널로 넘어올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예술 채널을 표방했던 KBS코리아가 또 하나의 지상파 재방송PP로 전락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방송사의 한 관계자는 문화프로그램을 ‘계륵’이라고까지 말한다. 없애기엔 부담이 너무 크고 키워 나가자니 방송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KBS 문화프로그램의 한 PD는 “TV로 공연장, 전시장 분위기를 전하는 데 분명 한계가 있다”며 “화제성 신문 기사로 근근히 연명하는 형편”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한 자릿수 시청률에 마냥 유지만을 바랄 수는 없지 않나. 개편 때면 늘 머리를 싸매고 조마조마해 한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방송사나 일선PD, 방송위 모두 특별한 대안을 찾지 못하는 형편. 이번 봄 개편에서 3사 모두 문화 프로그램 신설, 폐지 계획이 없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존 프로그램을 폐지하려 해도 이젠 없앨 것마저 남지 않은 게 문화 프로그램의 쓸쓸한 현실이다. “우리라고 예술을 외면하고 싶겠나. 방영할 때 외면당해 없애겠다고 하면 그제서야 시청자는 비난을 퍼붓는다.” 방송사의 한 관계자의 말은 대중문화의 최전선인 방송과 순수예술이 만날 길은 멀고 험하다는 것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