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칠레가 FTA협상을 공식선언한 후 4년5개월만에 비준안이 통과됐다. 칠레와의 FTA 체결은 이 시간이 말해주듯 수많은 곡절을 겪었다. 정부가 칠레와 FTA를 추진한 배경은 지난 9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계무역기구(WTO)출범으로 자유화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치고, 지역주의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위기감을 느낀 정부가 FTA를 중요한 대외경제정책 수단의 하나로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98년11월 대외경제정책조정위원회에서 칠레와의 FTA를 우선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준비기간을 거쳐 양국 정부간 협상이 시작된 것은 99년9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기간중 열린 한ㆍ칠레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들이 FTA 공식협상 개시에 합의했다. 그리고 그 해 12월 본격적인 협상에 들어갔다. 양국간 협상은 태평양을 넘나들며 계속된 끝에 2002년10월 최종 타결되고 작년 2월 공식 서명절차까지 마쳤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반대 서명에 나서는 등 반발의 강도는 예상을 넘었다. 농촌이 지역구인 일부 국회의원들까지 가세하자 반대목소리는 더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해 7월 비준동의 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에서의 찬반 논란은 더 가열됐다. 무산 위기감까지 돌았으나 다행히 12월말 국회 상임위(통일외교통상위원회) 관문을 어렵사리 통과했다.
문제는 본회의 통과였다. 1월8일 본회의 처리가 시도됐으나 소위 `농촌당`의원들의 육탄공세에 막혀 좌절되고 2월 임시국회로 넘겨졌다. 국회 상정후 해를 넘기며 FTA 비준이 표류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부 각 부처는 의원 및 사회지도층 설득에 총력전을 펼쳤다. FTA 왕따국으로서의 피해 등을 집중 홍보하며 여론 몰이에 나섰다.
기업들도 비준 지연에 따른 피해를 호소하며 통과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박관용 국회의장도 2월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그리고 9일 한ㆍ칠레 FTA는 결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임석훈기자 sh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