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출구전략에… 4~5개 보험사 RBC 빨간불

금리 올라 위험경계선까지 급락<br>대형 보험사도 150% 경계선까지 떨어져 금감원 RBC 규제강화 시기 연기 검토<br>자본 감소 돌발악재까지 겹쳐 "기업경영에 부담 준다" 판단


미국 등의 출구 전략 시사로 시중금리가 급등하면서 4~5개 보험사의 건전성 핵심 지표인 위험기준자기자본(RBC) 비율이 '생명 경계선'까지 급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저금리로 홍역을 앓았던 보험사들이 채권금리 상승으로 자산운용에 숨통이 트일 것이란 전망이 무색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은 보험사들이 보유 채권을 회계상 '원가'로 계산되는 만기부증권에서 '시가평가'를 적용 하는 매도가능증권으로 대거 돌려 놓은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한번 분류하면 2년 동안 바꾸지 못하는데, 저금리를 맞아 선제 대응한 조치가 예상보다 일찍 찾아온 출구전략에 오히려 독이 되고 만 것이다.


14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리 급등으로 보유 채권 평가이익이 하락하면서 RBC 비율이 당국의 가이드라인인 150%언저리까지 내려와 위험수준에 있는 보험사가 5개사 내외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대형 보험사들도 30~50%포인트 가량 급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기 침체와 보험료 인상 통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험사들이 지난 6월부터 본격화한 금리 상승으로 보유 채권 평가이익마저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보험사들은 이미 자본 확충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 3월말 기준 RBC비율이 155.2%였던 한화손보는 연내 2,000억원 가량의 자본 확충을 검토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유상증자와 후순위채권 발행 등을 두루 염두에 두고 있다"며 "이달 내로 구체적 내용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아비바생명(RBC비율 187.1%, 3월기준)도 후순위채발행을 결정하고, 내부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채권을 시가 평가로 돌려놓아 자본확충을 고민해야 하는 보험사가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3월 말 기준 RBC 비율이 200%를 밑도는 보험사는 ▲BNP파리바카디프생명 194.6% ▲KB생명 160% ▲AXA다이렉트 194.7% ▲흥국화재 191.3% ▲롯데손보 186.5% ▲메리츠화재 183.1% ▲LIG손보 177% 등이다. 보험사의 RBC 비율이 하락 추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보험사들은 자본 확충 가능성이 높은 후보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통상 보험사들은 원가로 계산되는 만기부증권과 시가로 평가되는 매도가능증권을 회계상 자유롭게 분류할 수 있다. 다만 한번 분류하고 나면 2년간은 바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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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채권 가운데 매도가능증권 비중은 적게는 전체의 60%에서 많게는 90%선까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매도가능증권이 증가한 것은 보험사들이 그만큼 저금리 가능성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돈줄 죄기 우려감이 일면서 금리가 들썩이자 낭패를 보는 곳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당국도 최근 금리 상승에 따른 문제점을 의식해 6월 말 기준 RBC 비율 가집계를 서둘러 요구하는 등 분주하다. 그 결과 삼성생명 등 상당수 대형사의 RBC 비율이 수십 %포인트 하락했고 한 대형 손보사는 150%를 간신히 웃도는 수준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당초 RBC의 신뢰수준을 95%에서 99%로 올리는 방안을 내년 말까지 시행하기로 계획했지만 이를 더 연기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신뢰수준이 100%라는 말은 금융위기 같은 악재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가 파산할 확률이 100년에 한 곳 정도라는 뜻이다. 95%는 20년에 한 곳이다.

이처럼 신뢰수준을 높이면 RBC 비율이 더 떨어지게 돼 당국은 가급적 현재 RBC 비율을 200%까지 올려놓아야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금리 상승으로 RBC비율이 더 떨어지자 규제의 완급조절을 시사하고 나선 것이다.

안 그래도 RBC 규제가 강화되는 마당에 자칫 금리 상승이 본격화될 경우 RBC 규제가 자칫 보험사 경영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도 보험사의 영업 환경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금리 상승에 따른 자본 감소라는 돌발악재까지 겹친 만큼 RBC 규제 강화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김해식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익성도 안 좋아지는데 가격(보험료) 규제까지 하면 당장 증자를 한들 누가 돈을 넣겠느냐는 보험사의 항변에 귀담아 들을 부분이 있다"며 "RBC 규제 강화가 바람직한 방향은 맞더라도 보험사 여건을 봐가면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RBC 비율이 떨어지면 법인 영업 등에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중형 보험사 관계자는 "채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돌리면서 자본 확충 측면에서 단기 효과를 봤던 곳들이 최근 가파른 채권금리 상승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길게 보면 저금리 기조가 맞더라도 당장은 금리가 올라갈 가능성이 커 내부적으로 고심하는 곳이 더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이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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