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22일] 수출입 금지법


‘우리나라 배는 수출입 상품을 선적할 수도, 출항할 수도 없다.’ 1807년 12월22일 미국에서 발효된 수출입금지법의 골자다. 동양권의 쇄국 또는 해금정책을 제외하고 서구 근대국가에서는 전무후무한 이 법을 추진하고 서명한 사람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루이지애나를 프랑스에서 사들여 서부 개척의 씨앗을 뿌렸다는 공로에도 경제 분야에서는 낙제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당무계한 법이 제정된 이유는 미국 선박의 안전. 나폴레옹 전쟁이 격화하며 영국과 프랑스가 중립국인 미국 선박을 나포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자 내놓은 고육지책이다. 1803년부터 1807년까지 영국은 528척, 프랑스는 389척의 미국 선박을 각각 나포한 가운데 특히 영국은 얼마 전까지 식민지였던 미국 선박의 선원들을 강제로 징집해 해군에 편입시켰다. 제퍼슨은 수출입을 금지하면 미국에서 면화와 생필품과 곡물을 수입하는 영국과 프랑스가 위축돼 선박의 자유통행을 보장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착오였다. 미국 경제만 병들었다. 4,800만달러였던 수출이 1년 만에 900만달러로 떨어지고 밀수가 극성을 부렸다. 밀수가 빈발하는 캐나다 일대를 내란지역으로 선포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반발과 부작용이 심해지자 제퍼슨은 14개월 뒤 통상금지법으로 법을 교체했지만 한번 막힌 경제적 동맥경화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가장 쪼들린 것은 연방정부. 돈줄인 관세수입이 격감한 탓이다. 정부가 예산을 확충하겠다며 단행한 관세인상은 심각한 지역갈등으로 이어졌다. 제조업 보호를 위해 관세인상에 찬성하는 북부와 면화 수출을 의식해 저율관세를 바라던 남부의 대립은 흑인노예 문제와 맞물려 끝내 남북전쟁으로 번졌다. 잘못된 경제정책이 국가를 찢어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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