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4월 26일] 명예퇴직의 딜레마

변화의 한해를 보내고 있는 한국거래소(KRX)가 딜레마에 빠졌다. 통합 거래소가 출범한 지난 2005년 이후 5년 만에 명예퇴직을 실시하면서부터다. 이번 명예퇴직을 받아들이는 거래소 안팎의 분위기는 5년 전에 비해 사뭇 달라졌다. 당초 5년 근무경력 이상 40명가량을 목표로 지난 20일까지 신청받았지만 신청자가 15명 안팎에 그쳤다. 거래소 측은 신청 기한을 일주일 연장, 27일까지 추가 신청을 받기로 했으나 추가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명퇴 실시는 올해 예정돼 있던 KRX의 인력감축계획안, 정원의 10.2%(78명)를 줄이는 인력조정의 핵심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기에 강제적으로 내보내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자청해서 나간다는 사람들은 더더구나 없다는 점이 KRX 측의 고민이다. 당장 5년 전에 비해 명예 퇴직자들의 인센티브(?)가 크지 않다. 명퇴를 먼저 실시한 금융공기업의 기준을 참고, 직급과 잔여기간 등을 고려해 24개월에서 30개월치 봉급을 명퇴금으로 지급하기로 했으나 거래소 직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최고 40개월치를 줬던 5년 전에 비해 명퇴금이 크게 준 것도 있지만 퇴직 이후 별다른 활로를 찾지 못하고 퇴직금만 까먹고 만 선배들의 사례 등이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됐다. 거래소 경영진도 이 정도의 명퇴금으로는 원하는 인원만큼 신청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3~4월에 걸쳐 경영실적 평가를 받았으며 하반기에 금융감독원 검사와 국회 국정감사까지 줄줄이 앞둔 공기업 KRX 입장에서 명예퇴직금으로 유보 자금을 충분히 사용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 KRX가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보고에서는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올해 정원의 10%에 달하는 청년 인턴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한쪽에서는 나가지 않겠다는 사람들을 내보내야 하고 또 한쪽에서는 정부 눈치를 살피며 과도한 청년인턴 채용계획을 밝힌 셈이다. KRX 인력구조는 1980년대 후반 증시호황기에 지나치게 많은 인력을 뽑아 상위직급 비중이 과도하게 높아진 기형적 모습으로 왜곡됐다. 이 때문에 인력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기계적 기준에 맞춰 무조건 내보내고 그에 맞춰 신입사원을 뽑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우리 사회 전반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10여년 만에 제2차 구조조정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명예로운 퇴직을 해야 하는 장년층도 바늘 구멍이라는 취업전쟁을 치러야 하는 청년층도 모두 구제하는 진정한 '일자리 나누기'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곳이 비단 KRX만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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