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업 세금 감면 확대·DTI 없애야 부동산 대책 효과
민간임대 활성화 땐 전월세난 해소에도 큰 도움줄 것
중소·중견기업 생존하려면 기술력·마케팅 차별화해야
"30년 이상 주택건설 업계에 종사해온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 사상 초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택 업계와 협회를 위해 미약하지만 마지막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어느 시기보다 해야 할 일이 많지만 5,000여 회원사와 협회 임직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하면 지금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울 여의도 주택건설회관에서 만난 김문경(75·사진)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은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임에도 30~40대 젊은이 못지않은 패기를 내비쳤다. 부드럽고 소탈한 인상이지만 주택건설 업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날카롭고 풍부한 식견을 드러냈다.
김 회장은 주택건설 업계의 대표적인 원로로 손꼽힌다. 30년 넘게 원일종합건설을 이끌어왔고 지난 2001년 제5대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을 지낸 바 있다. 그는 일선현장에서 건설근로 노동자가 느끼는 어려움부터 주택정책 부문의 실무자들이 겪게 되는 아쉬움까지 다양한 고충을 직접 보고 경험해왔다. 올해 초 다시 협회 수장직을 맡게 된 김 회장을 만나 주택건설 업계의 현안을 들어봤다.
이미 주택건설협회 회장을 지냈음에도 다시 제10대 회장 선거에 출마한 것은 더 이상 주택건설 업계의 어려움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김 회장은 "주택산업이 국가경제 발전과 국민 주거수준 향상에 주춧돌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며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는 업체들을 되살리고 주택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김 회장이 주택건설 업계의 어려움을 누차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수경기 침체로 부동산시장이 장기침체에 빠지면서 주택 업계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에는 6,500개가 넘던 주택업체 수가 현재 5,000개로 줄었고 연쇄부도 사태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해외건설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대형 건설사인 쌍용건설마저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중소·중견업체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이런 불안감을 반영하듯 중소·중견업체들의 사업은 사실상 동면상태에 놓였다. 주택건설협회가 실시한 '2014년도 공급계획 현황조사'에 따르면 자료제출 업체 3,038개사의 5.8%에 불과한 178개사만 올해 사업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94.2%에 달하는 2,860개 업체는 사업계획이 없는 셈이다.
"IMF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업계 지인들의 하소연을 매일같이 들을 정도로 주택건설 업체들의 어려움이 심각한 실정입니다. 다른 산업에 비해 선투자 비용이 매우 큰 주택사업의 특성상 주택시장 침체가 지속될 경우 '부도 도미노' 사태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루빨리 주택건설 업체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뿐 아니라 협회와 회원사들이 힘을 합칠 때입니다."
김 회장은 주택건설 업체들의 위기극복을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주택구매 여력이 있는 다주택자들이 시장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패키지 규제완화'를 이루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5년 이상 임대주택에 대한 양도세 면제, 임대사업자에 대한 취득세·재산세 감면 확대 등이 필요하다"며 "이와 함께 주택구입 목적의 담보대출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폐지 등을 동시에 시행해야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영종신도시의 '제3연륙교'처럼 기반시설 설치가 장기간 지연되고 있는 공공택지의 경우 택지교환 및 계약해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반시설 설치가 지연되면서 분양여건이 악화돼 공공택지를 보유한 업체들의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택지개발 사업시행자는 기반시설 설치비용을 택지비에 반영해 선분양하지만 기반시설 설치지연에 따른 분양지연 및 준공 후 민원해소는 주택건설 업체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당초 기반시설 설치기간보다 2년 이상 지연될 경우 택지교환 및 계약해제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시장 정상화를 위해 정부 대책 못지않게 업계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택시장 환경이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한 만큼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중소·중견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꾸준히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고 브랜드를 개발해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덩치가 큰 대형업체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차별화된 기술력과 마케팅 전략 등을 겸비한 우수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기술개발을 통해 고효율·친환경 주택을 지어야 하고 수요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내부설비와 인테리어를 갖춰야 해요."
이를 위해 협회 차원에서는 중소·중견업체들의 재도약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 임직원 개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주택산업연구원 등 연구기관과 협조해 주택건설 업체들의 생존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김 회장은 "협회는 주택업체들의 의견을 정부와 국민에게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며 "현장에서 느낀 어려움을 공론화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주택건설 업계를 되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단순히 주택건설협회 수장으로서의 소임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주택산업이 내수경기와 국가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주택산업이 연관산업에 미치는 영향력과 고용창출 효과가 탁월하기 때문에 주택산업을 살리는 것이 내수경기를 일으키는 지름길이라는 설명이다.
김 회장의 생각대로 주택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기준 전국의 건설업과 부동산·임대업 종사자 수는 136만4,000명이었다. 근로자 한명당 4인 가족 기준으로 환산하면 545만6,000명에 달하는 이들이 부동산 관련산업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가구업·이사업·인테리어업·도배업·전기업·설비업 등 서민층을 형성하는 자영업 종사자 수까지 더하면 숫자는 크게 늘어난다.
"주택시장이 수년간 장기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중산층과 서민들의 고통이 매우 큰 상황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연관산업에 악영향을 미쳐 서민경제와 국가경제 발전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화두가 '내수경기 활성화'였던 만큼 내수경기 진작을 위해서는 주택시장 회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김 회장은 주택산업뿐만 아니라 부동산시장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산업과 시장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동반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그는 새 정부 이후 발표된 4·1부동산종합대책과 8·28전월세대책 등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방안을 거의 담아낸 종합대책이었지만 대책 관련 법안처리가 지연되면서 정책 타이밍을 놓친 것이 정책효과를 반감시켰다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 정부의 잇따른 대책에도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타이밍을 놓쳐 시장에 강한 신호를 주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라며 "취득세 영구인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이 뒤늦게나마 통과되면서 시장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이 싹트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최근 급등하고 있는 전셋값을 안정시킬 묘안에 대한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 세제혜택 등의 지원을 통해 민간임대사업자를 양성화하고 이들을 육성하는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공공주택 보급만으로는 폭증하는 임대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임대 물량이 늘어나야 한다"며 "민간임대 사업이 활성화되면 심각한 전월세난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전했다.
He is …
△1939년 충북 괴산 △1982년 건국대 경영대학원 수료 △1985년 중앙대 건설대학원 수료 △1997년 산업포장 △1999년 금탑산업훈장 △2001년 대통령 표창 △1999~2001년 주택산업연구원 이사 △2004년 대한주택보증 이사 △2001~2004년 제5대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 △구리문화원 원장(현) △한국문화원 연합회 부회장(현) △원일종합건설 대표이사 회장(현)
■ 김 회장의 사업철학은
과유불급 … 큰 돈 욕심에 벌이는 대규모 사업 경계해야
집은 행복한 삶 담는 그릇
한채를 지어도 심혈 다해서
"어렸을 때 직접 신문을 돌려 번 돈을 집안살림에 보탤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습니다. 당시에 서울로 온 가족과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고 이때 집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습니다. 집은 단순히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삶을 담는 그릇입니다."
김문경 대한주택건설협회 회장에게 건설사업에 뛰어든 계기를 묻자 어렸을 때 겪은 지난했던 삶의 이야기부터 털어놓았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전세방을 전전하던 시절 '의식주' 중 '주'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후 김 회장은 가족들에게 따뜻한 거처를 마련해주고 나아가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집을 많이 짓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
김 회장은 "우리가 먹고 입고 생활하는 모든 행동이 다 집에서 이뤄진다"며 "집은 삶 그 자체이기 때문에 단 한 채를 짓더라도 심혈을 기울여 그 안에 따뜻함과 편리함을 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30년 이상 주택건설 업계에 종사해온 김 회장의 사업철학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일부 건설사 대표들이 주택사업으로 큰돈을 벌여보려는 욕심을 가진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항상 지나친 것을 경계하고 일을 크게 벌이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 회장은 "상당수 건설사들이 금융위기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경기변동에 따른 것도 있지만 돈 욕심에 사업을 너무 크게 벌였기 때문인 경우도 부지기수"라며 "이제 주택을 대거 공급해 떼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지난 만큼 중소규모의 사업을 신중히 벌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본인이 가진 사업철학을 협회 회원사 관계자들에게 거듭 강조하고 있다. 회원사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검소함과 소탈함의 필요성을 꾸준히 언급하며 업계 스스로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선진국의 경우 10~20가구씩 소규모로 사업을 하기 때문에 주택 수급조절을 탄력적으로 할 수 있어 결코 망하지 않는다"며 "우리 역시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수요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펴는 등 전략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김 회장의 사업철학은 '과유불급'이지만 그의 삶을 지탱하는 저변에는 '성실함' '끈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마냥 검소한 사람이 아니라 목표하는 바가 뚜렷하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려 노력하는 '열정남'이라는 얘기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생각하는 대로 실현된다(What we think, we become)'는 말이라고 한다. 김 회장은 "생각의 힘과 실천의 힘을 믿고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없는 것은 없다"며 "이는 주택건설 업계 종사자뿐만 아니라 취업난에 허덕이는 젊은 사람들, 실패를 맛본 사업가 등 모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라고 말했다.
사진=이호재기자
대담=정두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