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국내 증권산업은 진입제한 완화와 종합금융ㆍ투자신탁회사의 증권사 전환 등으로 그 규모가 크게 성장했다. 여기에 외국계 투자은행의 국내 증권업 진출이 본격화되고 국경간 거래(cross-border)가 증가하면서 글로벌화된 경쟁구조 속으로 신속하게 편입돼갔다.
증권시장도 외국인 지분 비율이 시가총액 대비 40%를 초과하기에 이르렀고 시장의 범위도 국가별 시장에서 범세계 시장으로 확대됐다. 정보기술(IT)의 발전에 따른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은 정보의 흐름을 과거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고 용이하게 하는 한편 증권시장에서 온라인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 주식거래대금의 60%를 차지하게끔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내 증권산업의 영업 및 경영행태는 크게 변화되지 않은 것 같다. 증권산업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위탁매매 부문의 치열한 경쟁으로 최근 4~5년 동안 증권산업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됐다. 증권회사의 영업구조도 차별화된 업무 및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비용측면에서도 IT 투자비용의 경쟁적 증가는 증권회사에 장기적인 경영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볼 때 앞으로 국내 증권회사가 매매회전율 증가에 의존한 위탁매매 위주의 영업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존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증권산업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증권산업이 앞으로 이러한 역경을 극복하고 선진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제도 및 규제환경의 근본적인 개선과 아울러 증권산업 종사자들의 혁신적인 경영전략과 노력이 요구된다.
첫째, `선별과 집중 전략`에 따라 저부가가치 형태의 영업을 털어내고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업무 분야로의 과감한 이행이 필요하다. 정부는 장외파생금융상품 거래 업무 및 일임형 랩어카운트 업무를 증권사의 겸영 업무로 허용하는 한편 주식연계증권(ELS)ㆍ워런트 등 신종증권을 증권거래법상의 유가증권으로 지정하는 등 증권회사의 수익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여건조성에 주력하고 있다.
이제 증권사 스스로도 저위험의 주식중개 기능에 안주하기보다는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업금융 업무 및 고객자산관리 업무 등에 전문화할 수 있는 조직의 개편 및 인력충원 등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둘째, 투자자의 신뢰회복은 증권산업의 존립기반이자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위탁매매뿐만 아니라 기업금융 업무 및 자산관리 업무 등에 있어서도 신뢰에 기초한 평판이 증권회사의 중요한 무형자산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증권사고 및 불건전 매매거래의 예방을 위한 이상매매 경고시스템이나 준법감시인ㆍ감사위원회의 역할 정립 및 선물ㆍ옵션시장의 과도한 투기거래 억제 등 안정화 조치는 모두 증권시장의 신뢰회복과 연관돼 있다.
최근 증권회사가 자율적으로 윤리경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임직원 윤리강령의 채택, 전담조직의 신설 및 교육강화 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바람직한 인식의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금융감독시스템도 새로운 규제환경에 맞도록 정비돼야 한다. 금융감독의 기본방향은 이미 규제 위주의 감독에서 리스크 중심의 차별적 감독으로 전환되고 있다. 또 적발 위주에서 사고예방을 위한 내부통제기준의 수립 등 자율적 규제로 이행되고 있다.
증권회사도 앞으로 조직 및 영업구조를 수익성 중심으로 재편함과 동시에 자기자본 이익률이나 수익성을 위험과 관련시켜 관리하는 선진경영기법을 과감히 흡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 증권산업은 풍부한 잠재성을 갖고 있다.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금융자산의 비중이 서구 선진국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고령화 사회의 진전 및 연금제도의 개선 등이 이뤄진다면 증권시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배가될 것으로 기대된다.
감독당국 및 시장 참여자들이 구조개편과 혁신적 경영전략의 접목을 통해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나갈 때 지금의 위기는 곧 기회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이상호 <금융감독원 증권감독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