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ㆍ달러 환율이 1,200원을 단숨에 돌파한 외환시장은 유혈이 낭자한 아마겟돈 그 자체였다. 딜링룸은 전쟁터였고 기업 등 달러가 필요한 곳은 달러 확보에 정신이 반쯤 나갔다. 당국은 패닉을 진정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외환 전문가들은 미 구제금융안이 다시 통과되기 전에 환율이 안정을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흐름상 추가 상승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환율 1,200원 시대 열렸다=이날 환율은 개장부터 사자세력이 몰리며 1,200원을 뚫고 단숨에 1,230원대까지 치솟았다. 당국의 개입과 차익실현 물량, 정부의 시장안정 의지 등이 섞이며 막판 1,207원으로 마감, 지난 2003년 5월 이후 5년4개월 만에 1,200원 시대에 재진입했다. 7거래일간 67원30전이나 급등한 것. 환율을 끌어올린 주요인은 역시 미 구제금융안의 부결 소식이었다. 외환스와프시장에서 현물환율과 선물환율 간 차이인 스와프포인트 1개월물이 신용경색 여파로 –5원50전으로 전날보다 1원75전 떨어진 점도 외화 유동성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여기에 8월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규모 적자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달러화 매수세에 불을 붙였다. 장 초반 1,230원까지 치솟자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며 “전혀 손을 못 쓰고 있다”고 전했다. 오후 들어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ㆍ금융감독원의 시장안정 대책을 비롯해 실개입 물량과 단기급등에 따른 차익매물, 추격매수 부담이 상호 작용하며 상승폭이 제한된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원ㆍ엔 환율도 불안한 기운을 더해가면서 오후3시 현재 전날보다 100엔당 39원10전 급등한 1,157원2전을 기록했다. 종가 기준으로 1999년 10월28일 1,152원81전 이후 8년11개월 만에 최고치다. ◇환율 어디까지 갈까=전문가들은 믿었던 미국 구제금융 법안이 부결되면서 달러 부족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9월에도 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외국인 자금의 이탈도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돼 환율 추가 상승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실제 단기 외화자금 시장에서 미국 구제금융안 불발 소식에 오버나이트(하루짜리 달러대출) 금리는 전날 2.80%에서 이날 10~12%로 치솟았지만 매도주문이 없어 거래가 체결되지 않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는 한은의 예상치인 90억달러를 한참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미 구제금융안의 의회 통과 전까지는 외환시장 불안이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과가 늦춰지면 환율이 하루하루 고점을 경신하면서 1,300원선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환율이 하루 20~30원씩 급등하고 있어 1,240원을 넘어서면 1,300원을 향할 가능성이 있다”며 “구제금융안이 통과하더라도 시행 과정이 진통을 겪을 수 있고 유럽이나 다른 지역으로 금융위기가 번질 수 있어 급락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장화탁 동부증권 연구원은 “환율이 하루에 수십원씩 움직이는 상황에서 충격이 더해져 단기 환율 전망은 무의미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