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중병환자와 부동산시장

오래된 병일수록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1년 걸려 생긴 병은 1년 걸려 치료하는 것이 상식이다. 10여년 동안 앓던 병을 서둘러 고치다 보면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적어도 10년까지는 걸리지 않더라도 최소한 1년, 그 이상의 회복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경험 많은 의사들은 치료기간을 길게 잡는다. 수술을 하더라도 환자가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후에 한다. 체력이 약해 수술을 견디지 못할 경우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돌팔이는 이와 다르다. 환자가 아프다고 하면 대충 이런 병이겠거니 지레짐작으로 처방한다. 열이 나고 소화가 잘 안된다고 하면 위장약에 감기약을 섞어 준다. 사흘 걸러 병원을 찾지만 환자의 차도는 별로 없다. 그래도 안되면 이런저런 수술을 해보자고 한다. 결국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 채 환자는 죽어가고 병원비는 산더미처럼 쌓여 가족들의 고통은 이중으로 늘어간다. 갈수록 도지는 부동산투기광풍 요즘 전국적으로 끓고 있는 부동산시장이 중병환자가 돌팔이 의사를 만나 병이 도진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약만 먹으면 괜찮아질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는 의사(청와대ㆍ열린우리당ㆍ정부인사)들의 말만 믿었던 환자(부동산시장)는 이제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 벌써 여덟번째 진단과 처방이 내려졌지만 환자는 도무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의사들마다 내리는 처방이 다르다 보니 의사를 믿지 못하는 불신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번 처방처럼 이번에도 약발이 곧 떨어질 것이라는 환자 가족들의 불안감은 예전보다 더 증폭돼가고 있다. 서울시는 25개구가 주택투기지역으로 지정돼 투기특별시가 됐다. 마산은 도시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밤샘 줄서기가 벌어질 정도로 청약광풍이 불고 있다. 이러다가는 전국이 투기장으로 변해 투기공화국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렇게 해도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되니 의사들의 처방은 돌팔이가 따로 없다.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놓고 금융감독당국과 시중은행간에 벌이는 책임논쟁은 한심하다. 신도시의 분양시기를 앞당긴다고 해놓고서는 후분양제에 발목이 잡혀 부처간에 옥신각신하는 것도 가관이다. 세금도 걷히기 전에 종합부동산세 대상을 확대하느니 마느니 하는 여당의 모습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환자는 열이 펄펄 끓어 숨이 넘어갈 지경인데 의사들은 “이 약이 아닌가 벼? 다른 약을 써 볼까”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는 부동산시장을 잡을 수 없다. 한국 부동산시장의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게는 지난 60년대 이후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이 시행되면서부터 시작됐고 가깝게는 80년대 이후 경제가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비롯됐다. 수출로 국내에 자본이 축적되면서 부동산, 즉 토지와 주택에 대한 투자(일부에서는 투기라고 부르지만)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탓이다. 토지는 한정돼 있고 아파트 공급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니 당연히 가격은 뛰게 마련이었다. 그런 행태가 고착화된 지 벌써 수십년이다. 대증요법보다 근본원인 치료해야 병이 오래 되고 깊은 만큼 치료기간을 길게 잡아야 한다. 참여정부처럼 대증요법을 써서는 안된다. 더 이상 극약처방을 해서도 안된다. 극약처방이 잦다 보니 내성이 생겨 이제는 아무리 강한 약도 잘 듣지 않는다. 고질의 원인을 총체적으로 진단하고 처방도 거기에 맞춰야 한다. 진단과 처방 못지않게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가 중요한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환자는 의사를 믿고 의사도 환자의 고충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불신만 증폭시키는 땜질식 처방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따라오라는 강압적인 자세를 취하거나 병이 낫지 않는 원인이 환자와 그 가족들 때문이라고 탓해서도 안된다. 시장을 이기려는 오만과 집값 급등의 원인을 일부 언론ㆍ건설업자 등 때문이라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집값 앙등은 분명 쉽게 고치기 어려운 한국병이다. 정부는 중병환자를 고친다는 자세로 차근차근 대응해야 한다.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잦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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