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仁淑(소설가)성악설에 의하면 인간이란 본래 악한 본능을 가진 존재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대개 성선설을 믿는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란 말도 성선설에 바탕을 둔 것일 터이다. 대개 사람이 지은 죄라는 것이 그 본능에 의한 것이기 보다는 잘못된 성장과정이나 사회화과정, 그리고 불우한 환경 등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는 믿음이 사람들에게는 있다.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 죄의 배경을 따지고 들어가보면, 죄는 이해할 수 없어도 사람은 이해할 수밖에 없는 구석이 어느 정도는 있기 마련인게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경악스러운 범죄가 일어날 때에도, 사람들은 그 범죄보다는 그러한 범죄까지 생겨나게 만든 사회상에 대해 더 개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정말 가끔이기는 하지만, 인간이란 본래 악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우울한 의구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아무리 이해심을 넓혀 생각해보려고 하더라도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것이 아이들을 이용한 범죄이고,그러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어른들의 행태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참혹한 것이 잊을만하면 생겨나는 유괴 행위이다. 그러한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온 사회가 다 들고 일어나 다시는 그런일이 재발되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 목소리가 잊혀지기도 전에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곤 한다.
유괴되었다가도 다행히 구출되는 아이들은 있었지만 결국 목숨을 잃은 아이들도 있었고, 드물게는 아이도 구해내지 못하고 범인조차 못잡은 경우도 있었다. 대체 사람의 어떠한 본성이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그것도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행복과 영달을 구하게 만든단 말인가.
최근에 양정규 어린이의 유괴사건에 대해서는, IMF가 만들어낸 범죄라는 말도 덧붙여지는 모양이다. IMF이후에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기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비정한 아비의 범죄행각으로 사회가 시끄러웠던 적도 있지만,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이 경제형 범죄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려운 사회가 사람들의 심성을 보다 더 각박하고 흉포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일 터이다.
그러나 설령 굶어 죽더라도 죽는 순간까지라도 지켜져야할 본성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절대로 용서될 수 없는 것도 있지 않겠는가. 어려운 시기를 건강하게 견뎌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일들은 그 뿌리까지 말끔히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IMF라는 어려운 시기에 더욱 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