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소득 기준 등 조건 까다로워 대학생 절반엔 '그림의 떡'<br>5% 넘는 고금리 등 부담 커 이용자, 전체의 10%선 그쳐<br>일반 대출자는 이자에 허덕 학생 신불자 3만명 웃돌아
| 대학생들의 학자금 부담을 위해 지난 2009년 도입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든든학자금)'가 신청 자격이 까다로워 대학생들의 이용 실적이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대학생이 든든학자금 대출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경제DB |
|
지방 소재 사립대에 다니는 A씨는 생활비와 정부 학자금 대출 이자를 마련하느라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때문에 '취업 후 학자금상환제(ICLㆍ든든학자금)'를 통해 대출을 받으려고 했지만 이전에 받은 학자금 대출 이자 부담에 생활비 마련을 위해 학점에 신경 쓰지 못했던 것이 걸림돌이 됐다. 이자를 갚지 못하면 신용불량에 빠지기 때문에 하루라도 아르바이트를 쉴 수 없다. 학교 축제, MT, 동아리 활동, 연애 등은 꿈도 못 꾸고 그냥 매 학기 잘 보든 못 모든 일단 중간ㆍ기말고사에 참여하는 데만 의의를 두고 있다. 힘들게 학교 다니느라 인턴경험, 높은 어학점수, 공모전 참여 등과 같은 스펙을 마련하기도 어려워 '졸업 이후 취업에 성공해 과연 학자금을 갚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9년 5월 한국장학재단을 설립해 2010년 1학기부터 ICL 운영에 들어갔다. 당시 정부는 "이제 돈 없어 공부 못한다는 말이 거짓말이 됐다"며 "ICL 이용자가 1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2010년 실제 이용한 학생은 23만2,384명에 그쳤다. 한해 대학에 등록하는 대학생이 220만명가량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10% 남짓 이용한 것에 불과한 수준이다. 정부는 예상보다 이용하는 학생 수가 많지 않자 올해 ICL채권 대납이자 지원 예산을 지난해 3,015억원에서 1,116억원 수준으로 낮췄다.
예상보다 이용 실적이 저조한 것은 수능 6등급 이상(신입생), B학점 이상의 성적(재학생), 35세 이하의 연령, 소득 7분위 이하의 소득 기준, 학부생 기준(대학원생 배제) 등 자격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 조건대로라면 현재 전체 대학생의 절반 정도는 원천적으로 신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생들의 불만이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은 "대출이자가 2010년 2학기 5.2%, 2011년 1학기 4.9% 등 5%대의 고금리인데다 군복무 중에도 이자를 물리고 취업 이후 상환이 시작되는 시점에는 복리방식을 적용해 대학생·학부모들의 불만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ICL로 대출을 받은 학생들은 당장 신용불량자가 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일반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들은 A씨처럼 이자를 갚기 위해 하루하루 전쟁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거나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잃게 되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신용불량에 늪에 빠질 위험이 커진다.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가 신용불량자(신용유의자)가 된 대학생 수가 올 4월 기준 무려 3만57명에 달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대학생 신용불량자는 2007년 3,785명에서 2008년 1만250명으로 급증했고 2009년(2만142명)에는 2만명을 넘었으며 올해 4월 3만명을 돌파했다.
교육계의 한 관계자는 "맞춤형 장학제도라던 정부의 ICL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신용불량자가 3만명까지 늘어난 것 아니냐"며 "어설픈 정부 정책이 한계상황에 몰린 대학생들을 반값 등록금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도록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반값 등록금을 주장하는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정치권에서 포퓰리즘식 정책을 내놓으면서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반값 등록금 요구에 한나라당은 최근 2014년까지 총 6조8,000억원의 재정과 1조5,000억원의 대학장학금을 투입해 대학등록금을 30% 이상 인하하는 방안을 내놓았고 정부는 이에 동의했다. 재정지원을 2013년 2조3,000억원, 2014년 3조원으로 늘리고 대학들은 매년 저소득층 지원 장학금으로 5,000억원씩 지원토록 해 전반적인 대학등록금 부담이 2013년에 24% 이상, 2014년에 30% 이상 낮아지도록 할 계획이다.
하지만 등록금에 대한 재정지원은 단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지속돼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단 늘어나면 다시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재원에 한계가 있는 만큼 대학을 지원하게 되면 다른 분야에 대한 지원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내년에 늘어나는 예산으로 일부 충당되기도 하겠지만 일단 교과부 내에서 다른데 쓰일 예산을 최대한 구조 조정해 대학 등록금 지원 관련 재원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이쪽(반값 등록금)에 안 쓰면 다른 복지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텐데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피해를 보는 분야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진성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일자리 창출문제, 빈곤층 아동의 저학력 대물림 해소 등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들도 많은데 중요한 투자재원이 대학생들에게 우선 지원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등록금 문제는 무조건적인 인하가 아니라 대학교육의 질과 교육효과를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며"등록금 인하를 위해서는 부실대학 정리, 교육시장 개방, 대학의 고비용구조 개선, 기여입학제 도입 등 규제개선 등을 추진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