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이 불길하다. 유럽발 금융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원ㆍ달러 환율은 물론 한국 해외채권에 대한 신용위험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우리은행 사태로 촉발된 은행권의 외채 상환 압박, 수출 급감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 심각한 경기침체 등으로 외환시장을 둘러싼 변수들이 온통 잿빛이다. 이에 따라 환율이 더 오를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3월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지만 불안감만은 점증하는 모습이다.
◇외환시장 불안감 확산=최근 외환시장은 지난해 말의 폭풍을 연상하게 할 정도다. 우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아이슬란드ㆍ그리스ㆍ러시아 등 유럽 국가의 차환 리스크로 달러 매수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미 GM의 파산신청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금융시장의 심각한 불안 요인이다.
우리은행의 해외채권 콜옵션 포기에 따른 후폭풍도 거세다. 이는 국내 은행권 전체 상환 의구심으로 번지면서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연일 치솟는 중이다. 한국 국채 5년물에 대한 CDS는 지난 13일 현재 356bp(0.01%포인트)로 한달 전에 비해 80bp나 급등했다. 또한 우리은행은 이달 들어 130bp나 폭등한 580bp를 기록했고 하나은행은 104bp 뛴 544bp를 나타냈다.
또한 외환스와프시장에서 스와프포인트(선물환율과 현물환율 간 차)도 지난달 초 플러스에서 최근 들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스와프포인트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달러 수요가 원화에 비해 훨씬 많다는 의미다.
여기에 1월 무역수지가 30억달러 적자에 달하면서 달러 수급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바닥을 가늠하기 어려운 심각한 경기침체도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환율 추가상승에 무게=이 같은 외환시장의 불안감은 특히 환율 움직임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16일 원ㆍ달러 환율은 전일 대비 23원30전 급등한 1,427원50전을 기록했다. 5일 연속 상승 중이고 연말 종가(1,259원50전)에 비해 무려 168원이나 치솟았다.
이영철 외환은행 딜러는 “지난주와 달리 매수세가 팽배해진 상태”라며 “주가가 하락한데다 기업들의 네고물량이 사라졌고 역외에서 매수세가 가담하면서 환율이 급등했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환율이 추가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영철 딜러는 “그동안 1,420선이 막혀 있었는데 오늘 뚫리면서 환율이 한단계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도 “기술적으로 추가상승 기대감이 커졌다”면서 “다음 저항선인 1,450선을 테스트하는 흐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탁구 KB선물 과장은 “은행들의 외채상환 압박이 커지면서 환율상승은 불가피해 보인다”며 “1,450원 돌파는 시간문제로 여겨진다”고 내다봤다.
◇‘3월 위기설’로 번지지는 않을 듯=하지만 이 같은 외환시장의 불안감이 일부에서 우려하는 ‘3월 위기설’의 현실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우선 은행권의 외채 부담은 있지만 생각만큼 크지 않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외국계 은행을 제외한 국내 은행권의 올 상반기 만기도래하는 외채 규모는 약 190억달러에 달한다. 1~2월 각 40억달러이고 우려되는 3월도 50억달러 수준이다. 2ㆍ4분기에는 다 합쳐 60억달러가 도래한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이미 20억달러씩을 조달해놓았고 3월에 돌아오는 만기 규모도 크지 않다”며 “지난해 4ㆍ4분기에 상당 부분을 갚아 은행권의 부담은 매우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3월 돌아오는 일본계 자금은 60억달러로 이중 결산과 맞물려 일부 이탈할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큰 규모의 회수 움직임은 없다”며 “3월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일본계 투자자금은 총 250억달러 수준으로 알려졌다.
김용준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3월 위기설에 시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지난해 9월이나 연말에 비해 걱정할 만큼 사태가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