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여년간 미국과 적대 관계였던 쿠바가 정치 개혁, 경제 개방에 나서면서 제2의 미얀마가 될 지 국제 사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얀마는 수십년 군부독재를 겪다가 지난 2011년 테인 세인 대통령 집권 후 과감한 민주화와 경제 개방으로 아시아의 유망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라울 카스트로 정권은 경제난으로 국민 불만이 고조되자 자유무역지대 설치 등 외국인투자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 사회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중남미 지역 영향력 확대를 위해 관계 정상화를 서두르고 있고 중국, 브라질 등은 투자 확대에 나선 상태다. 특히 카스트로 정권의 공언대로 다음달 획기적인 규제완화 조치가 나올 경우 해외 투자가들도 쿠바 진출을 서두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사회 '쿠바 껴안기'= 지난달 28~29일(현지시간) 쿠바 수도 하바나에서 열린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국가공동체(CELAC) 회의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 등 중남미 주요국의 정상들이 몰려들었다.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미주대륙 33개국 모임인 CELAC는 '아바나 선언'을 채택하고 미국이 52년간의 쿠바 경제 봉쇄를 풀고 테러국가 지정 정책도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U도 외교관계를 단절한 지 11년만에 쿠바와의 관계 복원에 나섰다. 지난 10일 EU 18개국 외무장관이 미국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브뤼셀에 모여 대쿠바 무역 증진, 투자 강화 등을 선언한 게 단적인 사례다.
익명을 요구한 EU 관리는 최근 로이터에 "쿠바는 자본을, EU는 카리브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네덜란드의 경우 지난달 외무장관이 하바나를 방문했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유럽 인사로는 최고위급 방문이다. 스페인 역시 쿠바와의 관계 개선을 지렛대로 삼아 과거 식민지였던 중남미 지역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EU는 2008년 이후 허리케인 복구 등에 8,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도 했다.
중국, 러시아 등도 미국 견제를 위해 틈만 나면 미국에 대해 "쿠바 금수조치를 해제하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 부주석의 경우 쿠바를 방문해 라울 라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쿠바는 프론티어 마켓= EU, 중국 등의 쿠바 진출은 아직 미국 안마당인 중남미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가 주목적이다. EU의 경우 쿠바의 최대 외국인 투자가이자 베네수엘라에 이어 두 번째 무역국이지만 주로 사탕수수, 담배가 주요 교역 품목이다.
하지만 쿠바가 규제를 완화한다면 성장 잠재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우선 카브리해 한가운데 위치한 쿠바는 파나마 운하와도 가까워 물류 중심지로 발전할 여지가 많다. 브라질 정부가 아바나 서쪽의 마리엘 항구 인프라 건설에 9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하고 지난달 호세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기공식을 가진 게 대표적인 사례다.
쿠바 정부는 마리엘이 연간 80만 컨테이너 처리 시설을 갖출 경우 자메이카 킹스톤, 바하마의 프리포트와 함께 아시아, 중남미를 잇는 카리브해의 3대 항만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마리엘을 자유무역지대로 만들어 세제 혜택, 외국인 지분 100% 기업 허용, 각종 규제 완화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현재 마리엘에는 중국, 말레이시아, 앙골라 기업 등이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상태다.
쿠바 인근 멕시코만의 유전도 미 석유업체들의 눈독 대상이다. 이들은 이 지역 유전이 과거엔 고갈됐지만 최근 시추 기술 발달로 채산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미 정부에 금수 조치 해제를 로비 중이다. 쿠바는 전체 원유 소비의 절반 가량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아울러 쿠바는 무상교육·의료를 실시해 와 노동력 질이 우수하고 국민들의 소비 욕구도 커지고 있어 내수 잠재력도 크다.
문제는 사회주의 특유의 규제 걸림돌이다. 가령 쿠바 정부는 외국인은 반드시 합작사를 설립하도록 하고 쿠바 근로자에 달러를 임금으로 지불하도록 한 뒤 정부가 쿠바 페소화로 바꿔주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도 2.7%에 그치는 등 경제가 빈사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정부 조치가 언제 뒤바뀔 지 모르는 것도 불안 요인이다.
하지만 쿠바 정부가 다음달 농산물, 노동 시장 등에 대한 대폭적인 규제완화 조치를 내놓을 경우 투자가들의 관심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미국 내 일부 쿠바계 부유층들이 투자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카스트로 정권은 밉지만 여건만 주어진다면 문화가 비슷한 고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플로리다주 설탕 재벌이자 미 정치권 자금줄인 알폰소 판줄은 최근 "쿠바가 적당한 개혁 조치와 투자이익 회수를 보증한다면 쿠바 설탕 산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