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왕생하소서"(신현진), "신이시여 왜 이런시련을 주셨습니까"(이만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납치ㆍ살해 과정에 가담했다는 신현진(가명)씨와 이만수(가명)씨가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에 진술한 내용 중 일부다.
1979년 10월 당시 어학 연수차 프랑스에 머물던 신씨와 이씨는 상부의 지시로김 전 부장의 납치 과정에 참여한 중정 요원들로, 특히 신씨는 김 전 부장을 승용차에 태워 제3국인 2명이 김 부장을 권총으로 살해한 현장 인근까지 차를 몰았던 핵심인물로 진실위는 지목하고 있다.
이들은 진실위와의 면담 과정에서 당시 상황 뿐 아니라 1979년 10월 7일 이후늘 머릿속을 짓누르던 정신적 고통도 함께 털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신씨의 경우 산에 오르다 사찰이 보이면 자신도 모르게 법당으로 발길이 움직였고 법당에서 김 전 부장의 극락왕생을 빌었다는 것이다. 특히 법당 안에서 몸이 지쳐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 없이 절을 반복한 적도 적지않았다는 것.
진실위 관계자는 6일 "신씨는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면서 김 전 부장의 극락왕생을 빌고 이승에서는 악연이었지만 저승에서는 좋은 인연으로 만났으면 하고 기원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천주교 신자인 이씨는 피정(避靜)을 가서 신과의 대화시간에 "신이시여, 제게왜 이런 정신적 시련을 주셨습니까. 제가 강하기 때문에 시련을 주셨나요..."라며 괴로움을 달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에 대한 면담조사는 진실위 국정원측 간사로 1974년 중정 시절부터 국정원에 몸담았던 김만복 국정원 기조실장이 직접 맡을 수 밖에 없었다. 이들을 예닐곱번씩 찾아가 때로는 술잔을 기울이고 때로는 읍소하며 설득했다는 게 진실위측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완강했던 이들도 "(진실규명은) 국정원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업보는우리 세대가 짊어지고 가자"는 설득에 그동안 꽉 닫아놓았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그렇기에 제대로 떨쳐버릴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 따른 심적 고통도 함께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이 두 사람은 모두 퇴직한 상태다. 신씨는 당시 직급에서 그만뒀고 이씨는 상당기간 재직하면서 고위간부까지 지냈다.
진실위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품고 있었던 진실을 털어놓고 반성하면서 질곡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며 "진실 규명의 목적은 가해자와 피해자 둘다를 구제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