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듯 독백처럼 내뱉던, 한 편의 시와 같던 그 노래의 울림을 기대했다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다. 영원한 가객 고(故) 김광석의 명곡으로 만들어낸 주크박스 뮤지컬 '그날들(사진)'은 추억의 노래에 색다른 스토리를 얹어 향수를 자극하지만, 음악과 이야기의 헐거운 연결 탓에 원곡의 감성에서 멀어져간다.
이야기는 1992년과 2012년 발생한 두 개의 실종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1992년 한중수교 체결을 앞두고 양국의 비밀 대화에 참여했던 여자 통역사와 청와대 경호원 무영이 사라진다. 20년 뒤, 한중수교 20주년 행사가 한창인 어느 날 친구와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던, 대통령의 고등학생 딸인 하나가 경호원과 실종된다. 두 사건을 이어주는 존재는 청와대 경호실장이자 20년 전 무영의 절친 정학. 정학이 하나를 찾아 나서며 1992년 그 날의 비밀이 밝혀진다.
스토리와 배우, 무대 면에서 그날들은 나무랄 데 없는 창작 뮤지컬이다. 의문의 실종과 여고생의 가출이라는 결 다른 2개의 사건은 매끄럽게 전환하며 한 무대에 펼쳐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와 절도 있는 군무도 인상적이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음악과의 조화다. 김광석의 노래로만 전체 넘버를 구성하다 보니 다수 장면에서 스토리에 음악을 끼워 맞춘 것 같은 작위적인 해석과 설정이 발견된다. 무영과 통역사의 실종 이후 특수부대로 전출된 정학이 '이등병의 편지'를 열창하고, 정학에게 아픈 기억에서 벗어날 것을 조언하는 청와대 주방장이 '또 하루 멀어져간다', '조금씩 잊혀져 간다'는 가사가 등장하는 '서른 즈음에'를 노래한다. 하나가 친구들과의 다툼으로 눈물 흘리는 장면에선 수행 경호원이 설마 했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을 부른다. 피상적인 가사 해석으로 노래와 장면의 이음새는 들뜨고 원곡의 감성과 노랫말 여운도 휘발된다. 역설적이게도 '김광석 뮤지컬'이란 정체성에 스스로가 갇혀버린 셈이다.
오히려 김광석에게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겐 애잔한 감동에 적당한 유머까지 갖춘 작품일 수 있겠다. 그러나 그와 그의 노래를 음미하고 추억하는 다수 관객에겐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길 듯하다. 내년 1월 18일까지 대학로 뮤지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