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이상규 K옥션 대표

호기심 많던 은행원, 미술경매회사 대표로…

"높은 이자보다 좋은 그림 권할 때 더 행복해요"



금융상품 설명 듣던 노신사분
상담실에 걸린 그림 잘 봤다며 1억 선뜻 맡길 때 큰 충격 받아
서울옥션CFO로 미술과 첫 인연… 2005년 신생회사 K옥션서 러브콜
그해 첫 경매서 51억 낙찰 대박쳐
작품마다 가치 들쭉날쭉 하겠지만 미술품 가격 장기적으로 올라갈 것


1992년 하나은행 개포동 지점이 막 새로 문을 열었을 때다. 신규 고객을 모으고자 연이율 17.3%의 파격 조건을 소개하는 피켓 캠페인까지 벌였던 어느 날이었다. 젊은 은행원은 상담실에 마주 앉은 노신사에게 상품소개와 이자율 안내를 하느라 얼굴까지 빨갛게 상기됐다. 그런데 문득 이 고객이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슬쩍 엿본 고객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해보였고 행복감마저 전이되는 기분이었다. 나지막이 "그래요, 계속 말씀해보세요" 할 뿐이었다. 은행원은 열띤 상품설명을 끝마친 다음 '자, 이 정도면 어떠십니까?'라는 표정으로 눈을 반짝이며 고객을 응시했다. 그러자 고객은 흡족한 미소를 온 얼굴 가득히 머금으며 "저 작품 어디서 났어요? 그림 참 좋네요"라고 답했다. 고객이 자신의 뒤쪽 벽에 걸린 그림만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은행원은 황망했다. 즉시 고객은 지갑을 열어 1억원을 꺼내놓았다. "그림 좋은 거 봤으니, 그림 값 해야죠. 설명은 더 필요 없어요. 이 대리가 알아서 좋은 거 해주겠지." 당시 대리이던 이상규(사진) K옥션 대표는 뭐에 홀린 듯했던 그날을,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고객의 행동을 그 후로도 몇 년간 가슴에 품고 살았다.


"예술은 감동을 주고, 그 감동은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거래를 심화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게 예술의 힘입니다."

오는 18일 대규모 여름경매를 앞두고 프리뷰(사전 전시)가 한창인 지난 9일 서울 강남구 언주로 K옥션 전시장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뉴욕의 소호 거리에서도 만날 법한 짙푸른 슈트와 일찍 센 흰머리가 경쾌함마저 풍기는 이 대표의 모습에서 20여년 전 은행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의 양복색 '파랑'은 이번 경매에 출품된 이우환의 유화 '점으로부터(이하 추정가 4억~8억원)', 김환기의 '봄의 소리(6억~9억원)'로 연결됐고 일찍 온 더위는 일본 작가 구사마 야요이의 붉은색 작품 '모자(Hat·7,500만~1억5,000만원)'로 화제를 넓혀갔다. 역시나 이게 바로 예술의 힘이다.

무역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군 제대 후 1985년에 신한은행에 입사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평범하고 무난한 삶일 줄만 알았다.

"돌이켜보면 제 자신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더군요. 신한은행에 지원한 것도 설립 3년의 새 금융사였기 때문이었는데 참 좋은 조직에서 나름 우수 직원상을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던 중 단자업을 하던 한국투자금융이 하나은행으로 바뀌게 되는데 어떻게 자리를 잡아갈까 궁금하더라고요."

이 대표가 하나은행으로 옮긴 1992년 그해에 그림 본 값으로 1억원을 맡긴 고객을 만났고 그때 벽에 걸렸던 그림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분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은 종종 머리를 스쳤다.

"1994년에는 하나은행 여의도 중앙지점으로 근무지가 바뀌었습니다. 우연히 한 빌딩 지하전시장에서 열리는 미술 전시를 보게 됐어요. 사전 정보도 없이 그야말로 우연히 마주한 그림 한 점이 그 바쁜 와중에 나에게 위안을 주더군요. 무척 편하고 괜히 좋아서…평생 처음으로 그림을 샀습니다. 당시 주식으로 수익을 본 게 있어서 선뜻 샀어요. 집에 걸어두고 그림을 보며 쉼터를 떠올리는 제 자신을 보며 그때 1억원을 내민 고객을 조금은 이해할 듯했습니다."

그때부터 미술에 약간의 관심이 생겼지만 업무와 생활이 바쁘다 보니 깊이 들여다볼 여유는 없었다. 그러던 중 2000년 서강대 경영대학원에서 6개월 단기 집중 코스로 금융전문가 과정을 이수했다. 어린 학생들도 접하고 새로운 경영이론도 배우면서 '세상을 더 넓게 봐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됐다.

이 대표와 미술계의 인연은 2002년 서울옥션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오면서 시작됐다. 자신의 전문 역량을 살려 재무담당 이사로 일했다. 금융계 출신인 그에게 미술은 일인 동시에 알아가고 배워가는 '새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 '새 친구'의 부름으로 2005년 여름에는 과감하게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프랑스와 독일·스위스·이탈리아 등 다양한 도시를 방문해 컨템포러리(동시대·현대) 계열의 미술관만 찾아다녔다.

"런던의 테이트모던, 파리 퐁피두센터 같은 미술관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만났어요. 관광객인 저는 빨리 가서 하나라도 더 볼 생각에 분주한데 그곳에서는 가족 관람객들이 여유롭게 기다릴 줄 알고 몇 십분짜리 영상작품도 차분히 앉아서 보고 또 보는 게 아닙니까. 근사한 전시 노하우, (근대미술이 주도하는 당시 국내 미술계 분위기와 달리) 현대미술의 영향력을 배운 동시에 문화 선진국의 사람들이 예술을 즐기고 감상하는 태도에서 더 많이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속도만 다를 뿐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향유하는 풍토로 나아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귀국 직후 신설 경매회사인 K옥션의 러브콜을 받았다. 2005년 9월이었다. K옥션 설립과정에는 하나은행도 지분 15%로 참여했다. 세계적인 슈퍼리치 자산가들은 투자 포트폴리오의 5% 이상을 미술품으로 꾸릴 만큼 미술은 향유의 대상인 동시에 자산적 가치로도 중요하다. 은행이 프라이빗뱅킹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 미술품에 투자하거나 경매회사와 제휴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금융기관들이 문화를 후원하는 것은 메세나적 사명감뿐 아니라 고객이 그러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UBS는 엄청난 후원금으로 아트바젤(세계 최대 아트페어)을 후원해 자신들의 VIP만을 위한 부스를 따로 둡니다. 은행의 최고 VIP만 들어가 남들보다 먼저 작품을 보고 구입할 특권을 얻는 거죠. 고객의 로열티(충성도)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자율이 아니라 아트입니다. 예술을 이해하는 것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 오랜 전통을 갖고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금리는 따라 바꿔도 예술에 대한 안목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고객의 만족과 기쁨을 배가시키는 방법은 자기가 즐기는 부분에 대한 공감입니다. 예술은 고객을 떠나지 않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2005년 11월10일 첫 경매가 열렸다. 첫 경매 낙찰 총액이 51억원. 한 경매에서 그렇게 많이 팔린 것은 처음이었다. 직전 2004년의 국내 미술시장 규모가 102억원 정도였는데 신생 K옥션이 한번에 51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그해 경매시장 총액은 149억원대로 뛰어올랐다. 이 대표는 휴대폰을 열어 당시 거래된 천경자 화백의 '편지 읽는 여인'이라는 작품 이미지를 보여줬다. 작아서 안 팔릴 것이라던 1호(엽서 크기 정도)짜리 작품은 4,000만원에 시작해 6,000만원에 낙찰됐다. 최고의 작품을 내놓았더니 고객들이 높은 값임에도 불구하고 사고 싶어 안달했다.

"경매가 열릴 때마다 김환기·이우환·박수근 같은 근현대 '국민화가'의 작품 낙찰가는 주거니 받거니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가격이 오르니 더 좋은 작품을 소장가에게서 받아올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좋은 작품을 가진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가치를 제시하고 구입하고 싶은 사람도 매력적일 작품을 내놓는 선순환의 구조인 거죠. 2006년에는 미술 기사가 전시보다 경매로 더 쏠려 모든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졌는데 운이 좋았을 테지만 전략도 잘 통했고 고객에게 진심을 다한 정성이 통하기도 했습니다. 적자를 각오했는데 이 정도로 고객 수요가 있을지는 몰랐거든요."


2007년과 2008년 상반기까지 미술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을 했지만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뉴욕발 세계 금융위기로 찬물을 뒤집어썼다. 그해 미술시장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화려한 시절은 일장춘몽의 위기에 빠졌다. 자금 위기로 소장가들이 '던지듯' 작품을 내놓으니 작품가는 계속 떨어졌다. 화랑을 통한 작품 거래가 꽁꽁 얼어붙자 경매회사로 팔 작품이 더 몰렸고 수요는 적은데 공급이 몰리니 값은 추락하기만 했다. 힘들었다. 그나마 '잘될 때 번 돈을 안 쓰고 잘 둔 덕에' 버텼다. K옥션은 호황기에도 무리하게 사옥을 구입하지 않은 채 사간동에서 청담동으로, 신사동으로 월세살이와 전세살이로 옮겨다녔고 한결같이 30명 이내의 콤팩트한 조직으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실제로 K옥션은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영업이익만은 늘 좋았고 금융위기 타격으로부터 회복도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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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다 이 대표는 은행원 출신의 장점을 십분 발휘했다.

"은행과 경매회사가 아주 이질적인 듯 보여도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고객의 신뢰가 생명이고 고객을 위한 서비스 정신이 핵심이라는 것이죠. 은행에서 익힌 고객에 대한 정성을 미술계에서도 고스란히 접목했습니다. 그전에는 낙찰된 작품을 비닐로 싸서 보내곤 했으나 우리는 수천만원, 수억원짜리 작품에 딱 맞는 박스를 일일이 제작해 정성 들여 포장했습니다. 작품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대접을 하고 이를 통해 손님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게 필요했죠. 경매회사와 운송회사는 밀접한 협력업체인데 운송 때 설문지를 보내 고객만족도를 수집했고요, 좋은 점수를 받은 경우에는 운송비를 더 주는 식으로 서비스 수준을 개선했습니다."

돈 만지는 일보다 작품 보는 게 더 좋은 이 대표는 높은 이자보다 좋은 작품을 더 권하는 확고한 철학이 있다.

"그림 값이 비싼가요? 하지만 예술은 소비자의 힘이고 작품 값은 소비자가 정합니다. 미술품은 감상의 대상이자 재화의 가치가 있고 이 둘이 균형을 가져야 합니다. 너무 상업성만 따지면 천박해지고 예술성만 강조하면 무리가 있어요. 내 취향으로 그림을 사되 절대 빚 내서 사면 안 됩니다. 경제적 부담이 없는 범위에서 구입하십시오. 내가 좋아서 샀고 걸어두고 보면서 행복했는데 마침 재화적 가치까지 상승하면 그 그림은 더 예뻐보입니다. 모든 작품의 가격이 오르는 것은 아닐뿐더러 등락도 들쑥날쑥할 겁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미술품 가격의 전체 지수는 장기적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연 4~6회 메이저경매… 다국적 회사와 손잡고 한국미술 해외 소개도

■K옥션은

국내 미술 경매시장 점유율 2위의 K옥션은 지난 2005년 9월에 설립, 서울옥션과 더불어 양강 구조를 이루고 있다.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 고미술 등을 중심으로 1년에 4~6회의 정기 메이저 경매를 연다. 중간중간에는 다양한 기획경매, 자선경매, 컬렉션 경매 등을 열고 있으며 미술품의 대중화를 위해 국내외 유명 작가의 소형 작품을 중심으로 연 5~6회의 온라인 경매도 꾸준히 개최한다. 또한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지인 홍콩에서 대만·중국·홍콩 등 다국적 경매회사와 손잡고 연합경매를 열어 한국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이외에도 미술품 담보대출 사업과 미술품과 미술시장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매에 판매 작품을 맡길 경우 낙찰 가격에 따라 11~16.5%의 위탁수수료(부가세 포함)가 붙는다. 작품을 살 때는 금액에 관계없이 13.2%의 낙찰수수료를 부과한다.

K옥션의 설립과 함께 국내 미술 경매시장에 경매체제가 열렸고 경기 호황과 맞물려 미술시장은 비약적으로 커졌다. K옥션이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한 2006년 국내 경매시장 규모는 600억원까지 팽창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로 타격을 입었지만 서서히 회복세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2012년 9월에는 국내 경매 사상 최초로 국가지정 문화재인 보물 제585호 '퇴우이선생진적첩'이 경매에 올랐고 34억원에 낙찰됐다. 퇴계 이황과 우암 송시열의 글,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 이뤄진 이 화첩은 국내 고미술 경매 낙찰가 신기록을 세웠고 우리 미술품을 다시 보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상규 대표는

△1960년 서울 △1979년 경동고 졸업 △1983년 한국외대 무역학과 졸업 △1992년 하나은행 RM부장 △2005년 K옥션 재무이사 △2011년 K옥션 전무 △2012년~ K옥션 대표이사 △2013년 명지대 예술품감정학과 석사 △2014년 명지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



/글 ·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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