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 영향·전망 대법원의 판결로 삼성이 지난 10년간 계속돼온 경영권 편법승계 논란에서 벗어나게 됨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체제로의 전환에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특검으로 이건희 전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삼성 경영을 대표하던 '회장-전략기획실-계열사 경영진'의 3각 구도가 해체됐다. 이후 1년여 동안 삼성은 사장단협의회를 중심으로 과도기적 대응체제를 지속해왔지만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인 대응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법적인 걸림돌이 사라진 만큼 이 전무로의 경영승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전무는 지난 1996년 당시 90억원에 인수한 전환사채(CB)를 후에 주식으로 전환해 에버랜드 지분을 25% 확보했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ㆍ삼성전자ㆍ삼성카드를 잇는 순환출자구조의 정점에 있다. 삼성은 이 전무가 당장 승계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전무의 직급과 경험 등을 고려할 때 즉각적인 승계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전 회장이 언급했듯 이 전무의 승계는 경영능력을 인정 받은 뒤 이뤄지게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당분간 삼성전자 본사의 임원 자격으로 해외 거래선과 시장현황 등을 점검하면서 삼성을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행보를 지속할 것이라고 삼성 측은 설명했다. 그러나 그룹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명쾌하지 않다는 점은 이 전무가 조기에 전면 부상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 전무는 승진 연한을 채웠지만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해 올 초 정기인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늦어도 내년 1월 인사에서는 부사장급 이상으로 승진하면서 그룹 내 주요 보직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안팎의 관측이다. 지난번 사장단 인사에서 이뤄진 세대교체와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 조직개편 등도 이 전무 체제를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경우 사장단협의회 및 투자조정위원회 중심의 그룹 의사결정 구조도 어떤 형태로든 변화를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장단협의회는 주로 외부 초청 강연이나 경영환경 점검 등을 진행해왔으며 그룹의 중대 현안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투자조정위원회 또한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잔뜩 웅크렸던 삼성이 공격적인 경영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글로벌 불황이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이고 그룹 의사결정 구조에 변화가 온다면 특검 사태 후 '올스톱' 되다시피한 삼성의 투자와 공격적 시장전략이 제 기능을 찾으면서 특유의 '선도형 경영'에 나설 것이라고 재계는 관측했다. 일각에서는 이 전 회장 복귀에 대한 목소리도 내놓고 있지만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신 이 전무로의 승계 시점을 전후해 명예회장 등의 직책을 맡으면서 2선에서 삼성의 전체 경영에 대해 조언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적인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삼성의 입장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법원의 판결에 시민단체 등에서 반대 여론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오너 일가가 90억원 안팎의 자금으로 그보다 몇백 배 큰 가치가 있는 삼성 지배구조를 장악했다는 편법 승계 논란이 일시에 잠잠해지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또 지주회사 전환 문제 등 그룹 지배구조에 대한 갑론을박도 완전히 해소되기 어렵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 전무가 에버랜드의 최대 주주임을 인정 받았지만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 "금산분리 등 합리적 경영 시스템 수립이 삼성의 향후 과제"라고 강조했다. ■삼성그룹·재계 반응 삼성그룹은 이날 판결에 대해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29일 판결 뒤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재판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뭐라고 언급하기 어렵다" 며 말을 아꼈다.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10년 넘게 끌어온 경영권 승계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됐다는 점에서 안도와 기대가 묻어나왔다. 삼성의 다른 한 관계자는 "에버랜드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는 점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 이라면서 "승계와 관련한 최대 난관이 해소되면서 기업 본연의 역할과 책임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는 점은 긍정적" 이라고 평가했다. 삼성그룹은 지난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그에 따른 특검 정국으로 1년 반 동안 사실상 마비 상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룹 안팎의 현안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도 "대법원의 판결이 나와봐야 안다" 는 반응이 적지않아 그룹 차원의 움직임은 사실상 전무했다. 물론 법적인 문제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다시 활발히 사업을 펼칠 수 있게 됐다는 점은 임직원의 안도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대법의 무죄 판결로 특검 이후 가라앉았던 내부 분위기가 활기를 찾고 삼성맨의 자존심도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재계는 대법원의 판결을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판결은 어려운 경제를 활성화하고 삼성그룹의 글로벌 경영에 큰 도움이 될 것" 이라며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온 만큼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국민적인 성원과 지지를 기대한다" 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삼성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위법성 논란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며 "국가 경제가 매우 어려운 만큼 삼성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투자확대와 고용확대에 힘써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고 주문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판결이 국내 기업의 경영활동에 불필요한 제약을 해소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고 논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