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기업 사내유보금 과세

이인영 민주당 의원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

대기업들이 현금자산 등 회사 내 쌓아둔 사내유보금이 급증하자 야권을 중심으로 적정 수준을 넘는 적립금에 대해 법인세를 물리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의 유보율이 높을수록 재무구조가 탄탄하다고 평가받지만 그만큼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야당은 투자 촉진과 세수 확보를 위해 유보금 과세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계와 여권은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법인세를 올려 오히려 투자를 축소시키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 찬성 이인영 민주당 의원
투자·고용 확대가 기업 본연 역할
사회적 책무 방기에 '징벌' 마땅



최근 국내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이 지난 6월 말 현재 477조원에 달한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국민들의 원성은 컸지만 사내유보금 과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사내유보금 과세는 이중과세이기에 일반적 과세원칙에 어긋난다거나 사내유보금의 상당 부분이 이미 투자돼 있을 것이므로 이에 과세한다고 투자가 늘진 않을 것이라거나 사내유보금이 줄면 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될 것이라는 등의 비판이 그것이다. 이러한 반대논리들에 나름의 일리가 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현재 기업의 막대한 사내유보금이 문제로 떠오르는 사회경제적 배경이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사실은 그러한 바탕 위에서만 현재 사내유보금 과세법안의 타당성 여부는 물론 그에 대한 반대논리들도 적절한 평가가 가능해진다. 핵심질문은 바로 어떻게 기업은 그렇게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축적할 수 있었냐는 점이다. 사내유보금은 일정 기간 기업이 거둔 이윤에서 세금과 배당을 빼고 남은 금액이다. 이에 따라 반대자들은 사내유보금에 과세할 경우 배당이, 특히 외국인 주주에 대한 배당이 증가해 국부유출이 야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업, 특히 대기업집단이 막대한 규모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게 된 배경에는 일자리의 대대적인 비정규직화, 하청 중소기업 및 자영 대리점주 후려치기, 산업안전과 노동자보호 책임의 방기, 담합을 통한 독점가격 형성 등도 함께 자리한다. 그 결과 예컨대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나온 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소득 중 가계소득의 비중이 2000년 69%에서 2012년 62%로 줄어든 반면 법인의 몫은 17%에서 23%로 늘었다.

요컨대 10대 그룹이 쌓아두고 있는 477조원은 단순히 주주에 대한 배당을 아낀 결과이기만 한 게 아니라 노동자와 협력업체들, 나아가 국민 전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게을리한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이 477조원에는 현재 한국 경제의 온갖 모순들이 깃들어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사내유보금을 기업의 '쌈짓돈'으로 간주하는 반대론자들의 일반적 시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결국 사내유보금 과세는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않은 데 대한 일종의 '징벌'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중과세'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국부유출' 주장 또한 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중소협력사와 좀 더 민주적 관계를 유지하고 모든 노동자를 동등하게 대하는 데 쓴다면 의미를 잃을 것이다. 물론 우리 기업의 배당성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편임을 고려할 때 일정한 배당증가는 수용할 만하며 이는 곧 가계소득 증대로 이어질 수 있어 거기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과세를 피해 사내유보금이 줄어들면 기업의 투자가 방해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약하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우리는 대기업들이 사내유보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것이 우리나라 금융·자본시장의 발전을 가로막는 하나의 원인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혁신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고 투자와 고용을 늘리는 것은 기업 본연의 역할이다.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쌓아둔 채 이를 투자와 고용에 쓰지도 않고 임금과 배당으로써 국민들에게 나눠주지도 않는 기업을 과연 사회적 공기라 할 수 있겠는가. 사내유보금 과세는 결국 기업의 사회성을 복원하는 수단인 셈이다. 물론 사내유보금에 과세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할 인센티브를 조금 줄일 수 있을 따름이다. 최저임금의 대폭적인 인상, 비정규직 철폐, 대·중소기업 간의 정의롭고 공정한 관계 형성 등 요컨대 경제민주화를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노력들이 함께 진행될 때 그것은 의도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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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대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정책연구실장
불확실한 미래 대비 현금 자산 보유
세수 증대 위해 투자재원 빼가는 것


일부 정치권에서는 투자를 확대해 고용을 창출시킨다는 목적으로 기업 유보금에 대해 과세하는 법인세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기업 유보금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한 생각으로 과거 적정유보초과 과세가 왜 폐지됐는지 그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기업들이 유보금을 보유하는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단순히 세수를 증가시킨다는 근시안적 생각에 머물러 있어 우려된다. 과세 도입론자들은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고 사내유보금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투자와 유보금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 유보금이란 세금과 배당을 제외한 기업 내부에 잔존하는 잉여금을 의미하는데 일부에서는 이를 투자나 재생산과 관련 없이 쌓아 놓고만 있는 부정적 개념으로 잘못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잉여금에는 건물·토지·설비투자 등 투자금이 포함되므로 투자가 증가하면 유보율이 증가할 수 있다. 즉 기업이 매년 투자활동과 수익창출을 지속한다면 해당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의 경우 유보율과 설비투자 규모가 함께 증가해왔다. 또한 유보율 증가와 더불어 투자증가율도 상승돼왔으며 특히 유보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매출 대비 투자수준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사내유보를 통해 배당을 회피해 배당소득 과세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어 이를 시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1991년에 적정유보초과과세를 도입한 바 있다. 즉 당시 배당촉진을 위해 도입된 과세로서 투자촉진을 위한 목적세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적정유보초과과세는 기업의 배당을 인위적으로 유도해 이중과세 문제를 유발했다. 또 적정유보금 기준을 일률적으로 설정했기에 조세불공평의 문제를 양산했고 과세목표였던 배당촉진에도 실효성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재무건전성 확보와 조세환경 개선을 위해 2001년에 폐지되고 말았다. 따라서 현재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유보금 과세제도는 과거의 기준과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종종 과세 도입의 근거로서 미국에도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곤 한다. 그러나 미국의 유보잉여금세(AET)도 비공개법인에 대한 배당유도를 목적으로 하는 세제로서 투자촉진을 위한 것이 아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과세 유보금 기준을 합리적 필요성에 따라 판단하도록 하고 있어 과세대상을 제한적으로 보고 있으며 그 최종판단도 국세청이 아닌 법원이 하도록 돼 있다. 즉 매우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과세제도의 일률적인 기준적용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기업이 현금성 자산을 증가시키는 원인은 미래의 불확실한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외부 자본시장으로부터의 재원조달 대신 내부재원의 비중을 증가시키는 데 있다. 즉 불확실성이 높은 미래의 자본비용·금융비용을 우려해 상대적으로 확실성이 높은 내부자본에 대한 재원조달 의존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으로 나타나는 추세다. 그러므로 우리 기업들이 향후 구조조정을 대비해 현금성 자산을 증가시키는 것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정책은 기업의 경영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투자재원을 세수로 가져가 버리는 조세정책이 어떻게 투자를 촉진할 수 있겠는가. 정치권이 기업투자를 촉진하려는 생각에 진정성이 있다면 오히려 불확실성을 낮추는 경제정책과 더불어 투자공제 제도 같은 세제를 병행 추진하는 것이 적절한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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