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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에 해가 걸려 있다. 언덕길 옆에는 풀밭이 전개되고 나무 몇 그루가 서 있다. 쓸쓸한 저녁의 풍경이다. 이런 풍경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현수막이 높게 걸려 있다. 풍경을 여는 문처럼 장식되고 있다. 현수막 위에는 말 머리 두 개가 그려져 있다. 주술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축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가늘면서도 뚜렷한 선으로 그려진 대상, 중간 톤의 가라앉은 색조가 주는 아늑함이 현실감과 더불어 아늑한 몽환의 장면을 연출한다.
서양작가 권옥연(1923~2011)은 초기엔 향토적인 서정의 작품을 즐겨 다뤘지만 1950년대 중반 파리에 진출하면서 환상적인 세계, 초현실주의적 화풍을 보여준다. 후기로 넘어오면서는 초현실주의적 기법에 향토적 서정미를 융화한 풍경을 많이 다뤘다. 이 작품도 그 가운데 하나다. 먼 옛날의 이야기,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이야기들이 애절하면서도 한편 정겨운 감정으로 펼쳐져 온다. /글·사진=한솔뮤지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