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서경 금융전략포럼] 금융계 말로만 변화 외쳐… 순혈주의 벗고 인재 적극 영입을

■ 이성용 베인앤컴퍼니코리아 대표 주제강연<br>성장속도 글로벌은행 60% 불과… 체질개선 시급<br>경영진 장기적 비전 펼수 있게 독립성 보장해야

이성용 베인앤컴퍼니코리아 대표가 2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5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한국 금융의 새로운 트렌드 및 금융기관의 대응방안'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이 대표는 글로벌 금융산업의 흐름에 대한 폭넓은 식견으로 각광을 받았다. /이호재기자


"은행 경영진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순혈주의에서 벗어나 성과 중심으로 세계 최고 인재를 모셔야 더 큰 성장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성용 베인앤컴퍼니코리아 대표는 2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개최된 제5회 서경 금융전략포럼에서 한국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의 폐부를 꿰뚫는 날카로운 지적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바꿔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는데 진정 바꾸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Everybody wants to change the world, but nobody wants to change)"라는 말로 한국 금융산업의 현실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금융인들에게 물어보면 정부 탓을 하지만 사실 문제는 여러분(금융인)에게 있다"며 "금융을 못하는 것은 금융경영인이 경영을 못해서지 다른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국 금융성장 속도 세계적 은행의 60% 불과…금융을 '산업'으로=빠른 속도로 뒤바뀌는 글로벌 금융업계 판도와 비교해 한국은 정체된 상태다. 한국 금융은 지난 10년간 2.4배 성장했으나 이는 세계 20대 은행 자산과 비교하면 60%에 불과하다. 주력업종 또한 수익성장률이 매출성장률에 못 미쳐 체질개선이 시급한 상태다. 이 대표는 SC은행과 KB를 단적인 예로 비교했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SC은행의 시가총액은 KB와 비슷했는데 지금은 8배나 벌어졌다"며 "SC은행이 한국에서 잘 못한다며 자부심을 갖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아니다"라고 따끔하게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한국이 금융을 '산업'으로 인식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부가가치 기준으로 10% 정도면 산업으로 봐야 하는데 현재 금융업은 7% 정도"라며 "모든 산업을 분석할 때 돈을 버느냐, 체력이 약해지느냐 두 가지를 보는데 이 관점에서 한국 금융산업은 모멘텀도 잃고 체력도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정권교체마다 은행 경영진 '물갈이'=그렇다면 한국 금융산업은 어떻게 해야 도약할 수 있을까. 이 대표는 ▲거버넌스 ▲전략 ▲고객 충성도 ▲세계화 ▲인재 등 5가지 분야로 나눠 해법을 제시했다.

이 대표는 "국내 시중은행의 평균 임기는 2.5년으로 미국 톱 10대 은행(6.7년),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은행(4.6년)에 비해 턱없이 짧다"며 "과거 10년간 4대 금융사 경영진의 3분의2가 정권 출범 1년 전후에 교체됐다"고 지적했다. 그가 보여주는 슬라이드에는 2001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4대 금융사 CEO(지주회사 회장ㆍ사장, 은행장) 42명의 이름이 연대기별로 펼쳐졌다.

CEO 임기가 짧으니 단기성과에 급급하고 장기전략은 꿈도 못 꾼다. 임기가 늘면 나아질까. 이 대표는 "아마도(maybe)"라고 했다. 그는 "금융산업은 인건비, 정보기술(IT) 정도에 투자할 뿐 연구개발(R&D)에는 투자하지 못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1년에 700억~800억원씩 쏟아붓는 R&D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략의 부재…단골고객 명확히 파악하라=우리나라 은행 고객의 55%는 현재 이용하는 은행을 선택한 이유가 "가까워서"라고 답했다. 이 대표는 "이는 전략의 부재를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그는 "씨티은행이 전세계 주요 도시를 디지털로 연결하고 SC은행이 아시아ㆍ아프리카ㆍ중동 등 이머징마켓에 특화한 전략을 눈여겨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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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고객에 대한 '착각'도 언급했다. 베인앤컴퍼니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산업별 NPS(Net Promoter Score)를 비교한 결과 은행(-11%), 손해보험(-18.8%), 생명보험(-31.1%) 등의 고객 충성도는 백화점(7.7%), 중대형 승용차(6.3%)에도 한참 못 미쳤다. 자동차보다도 고를 게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한국 금융회사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다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며 "고객을 짝사랑하지 말고 금융업의 렌즈가 아닌 고객의 렌즈로 고객 로열티 요소를 명확히 파악해 이를 극대화하라"고 제시했다.

◇인재, 은행 내부서만 찾지 말고 유통ㆍIT 등서 찾아라=이 대표는 특히 인력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수차례 강조했다. 이때 비교한 것이 삼성전자다. 이 대표는 "인재유치가 연간 CEO평가의 30%를 차지하고 확보한 인재가 1년 안에 퇴사시 해당 CEO평가에 반영한다"며 "고(高)성과자에게는 CEO보다 높은 연봉을 지급하는 '특 당근론'으로 파격적 보상을 해준다"고 소개했다.

그는 청중에게 "최고인력을 금융에 데려오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분야 최고인력을 데려와라. 소비자 부문은 P&G에서, 고객관계관리(CRM)는 IT회사에서, 점포지점 매니저는 유통회사에서 영입해야 한다. 우리 조직에 적응을 못한다? 그건 그 사람이 아닌 경영자 잘못"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대표는 "지금 한국 금융산업은 안으로도 못 들어오고, 밖으로도 못나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수한 글로벌 인재 유치가 안 되면 글로벌 사업 확장이 안 되고, 그럼 다시 국내로 돌아와 동일 수익모델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레드오션에 저성장 저수익이 굳으면 좋은 사람이 안 들어오고, 글로벌 사업이 안 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혁신보다 안정을 선호하는 인재상을 더 선호하게 되고 성과보다는 조직, 다양성보다는 순혈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 이 대표는 "실력보다는 인적 네트워크(who you know)에 좌지우지되면서 역선택이 늘어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 대표는 "최근 아르헨티나에 출장을 갔더니 삼성전자와 중국 공상은행(ICBC) 간판이 가장 먼저 보이더라. ICBC라고 별 것 없다.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며 "한국 금융인들도 벽을 부수고 통찰할 수 있는 금융인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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