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월 20일] <1599> 영웅의 재판


1406년 1월20일, 베네치아 공화국이 충격에 빠졌다. 최고법원격인 17인 위원회가 카를로 첸(Carlo Zen)에게 유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첸은 숙적 제노아의 공격으로 패망 일보 직전인 베네치아를 구해낸 구국의 영웅.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던 인물이다. 죄목은 뇌물죄. 베네치아가 파도바를 점령하면서 확보한 서류뭉치 속에서 해군사령관 시절의 첸에게 금화 400두카트가 전달됐다는 서류가 발견돼 체포됐다. 법정에 선 첸은 파도바 영주가 어려울 때 빌려준 돈을 돌려받았을 뿐이라고 해명했으나 증거가 없었다. 첸의 체포는 베네치아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다. 시위도 일어났다.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오랜 외교관 생활로 외국에도 친구가 많은 첸을 단죄한다면 국익이 저해된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구성원의 대부분이 첸의 부하였던 17인 위원회의 결정은 2년간의 징역과 공직박탈. 국가 원수 자리를 눈앞에 뒀던 73세의 첸은 지하감옥에서 형기를 마쳤다. 출옥한 첸은 인기가 더욱 높아져 국내외의 방문객 행렬이 끊이지 않았으나 다시금 정치에 눈을 돌리지 않은 채 성지순례와 독서로 여생을 보냈다. 베네치아는 왜 거물 정치인을 '고작 저택 한 채 가격인 400두카트' 때문에 처벌했을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의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 나오는 17인 위원회의 토론장면. '인재를 처벌하면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두려워한다면 정말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단호한 판결을 내리는 나라에서는 언제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상인들의 공화국인 베네치아가 1,000년 넘게 풍요를 누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배계급일수록 엄격한 법률적 잣대를 적용하는 것. 베네치아를 넘어 대한민국을 본다. 법이 공정한가. 사법당국이 깨끗하고 정의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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