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봄에 쓰는 편지

벌써 2월이다. 오는 4일이 입춘인 것을 보면 봄은 이미 대지 속에 싹트고 있는지도 모른다. 점심시간에 잠깐 들러본 청계천 물의 흐름이 더 빨라졌다. 쉼 없이 흐르는 소리에 수면 위를 스치는 바람조차 부드럽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물보라처럼 가볍다. 1930년대 청계천 변의 스케치북이라고 하는 박태원의 ‘천변풍경’도 아마 이때 쓰여진 것 같다. ‘입춘이 내일모레라서 대낮의 햇살이 따뜻한 것 같아 천변에 구경꾼이 많이 모인다’고 표현하고 있다. 지금의 청계천은 도심으로 찾아온 봄소식을 맞는 인파로 붐빈다. 지난 겨울 추위는 무척 길었던 것 같다. 지방에는 폭설로 피해도 많았다. 따뜻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다. 언 땅 위에 새로운 생명이 피어나고 응달지던 뒤란에도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이 충만한 계절이 바로 봄이다. 1559년 명종 14년 정월 5일 바로 오늘이었다. 조선 성리학의 대가이자 중국에서조차 공부자(孔夫子)와 같은 칭호인 이부자(李夫子)로 성인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퇴계 이황이 고봉 기대승에게 편지를 띄운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을 펼친 이황은 지금의 국립대 총장 격인 성균관 대사성이었다. 백성을 국가의 근본으로 삼아 보민(保民)정치를 주장한 기대승은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33세의 청년이었다. 나이와 직위를 초월한 영혼의 교류가 편지를 통해 무려 13년 동안 상호존중과 애정의 자세로 계속됐다. 청마 유치환 시인은 지금의 통영 중앙동 우체국에서 이영도 시인에게 5,000여통의 편지를 보낸다.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로 시작되는 ‘행복’의 시비가 지금 청마거리로 지정된 우체국 앞에 서 있다. 안도현 시인은 ‘바닷가 우체국’에서 ‘편지 한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슬퍼질 것이다’라고 음유한다. 최근 미국의 한 시사주간지는 ‘삶의 질을 향상시켜줄 50가지 방법’을 소개한 바 있다. 요지는 큰 변화보다는 현실에 맞게 작은 것부터 실천하라는 충고다. 건강한 정신 함양을 위해 자선 활동과 독서 및 음악 듣기도 포함돼 있다. 오늘은 모처럼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을 들으면서 잉크 냄새나는 만년필로 편지를 쓰고 싶다. 이 봄,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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