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로 선박 건조가격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선주사들은 2~3년 전 배를 주문할 당시의 가격과 현재의 가격이 너무 차이가 나다 보니 기존에 주문했던 선박의 가격을 깎으려 하거나 아예 주문을 취소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최근 배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후판 가격마저 하락하고 있어 선박 가격이 당분간 지속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18일 세계적인 조선시장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선박 가격을 나타내는 월별 선가지수가 지난달 166포인트로 3년 전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이는 지난 2006년 6월 이후 30개월 동안 가장 낮은 수치로 지난해 같은 기간(184)과 비교하면 1년 만에 무려 38포인트나 하락한 것이다. 특히 미국ㆍ유럽 등 선진국의 소비시장 침체 장기화로 컨테이너선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면서 컨테이너선 가격 하락세가 컸다. 실제 5,600TEU급 컨테이너선의 지난달 선가지수는 95포인트로 2006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3,500TEU급 컨테이너선은 55로 30개월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박 가격이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발주량 급감에 따른 것. 실제 지난달 전세계 선박 발주량은 14만3,796CGT로 클락슨이 월별 전세계 발주량 조사를 실시한 1996년 이후 13년 만에 가장 적었다. 선박 척수로는 단 9척에 그쳐 지난해 1월 257척의 30분의1 정도에 불과했다. 지난달 발주된 9척의 배 중 우리나라가 4척, 중국이 5척을 수주했으며 일본과 유럽의 조선업체들은 단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다. 이처럼 배를 새로 만들려는 수요가 없다 보니 선박 가격도 끝없이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조선업체의 한 관계자는 "'수주 가뭄'이 아니라 '수주 사막'이라고 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선박 발주량이 적은 상황"며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과거에 수주한 선박건조가 완료되는 2~3년 후에는 고사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거에 체결했던 선박계약을 취소하거나 발주가격을 깎으려는 선주사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선수금을 떼이더라도 과거에 계약한 배를 취소해 새로운 선박건조를 백지화하거나 새로운 가격에 발주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7년 중반 이후에 발주된 선박들은 대부분 첫번째 대금만 지불된 상태"라며 "현재의 해운시황과 선가 하락 추세를 감안할 때 조선업체와 가격조정ㆍ인도연기 등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차라리 계약 자체를 취소하는 게 더 나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선박 가격은 앞으로 추가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전세계 철강업체들이 배를 만드는 데 쓰이는 후판 가격을 잇달아 인하하고 있기 때문. JFE홀딩스 등 일본 철강사들이 현재 국내 조선업계와 협상 중인 가격은 톤당 600달러 후반대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거래된 가격인 톤당 1,300달러의 절반 가까이 낮다. 동국제강도 최근 조선용 후판 가격을 기존 141만원에서 116만원으로 톤당 25만원 인하했으며 중국산 후판 가격도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하지만 후판 가격 하락은 선가 하락에 대한 압력을 더욱 높이지만 비용절감 효과가 크기 때문에 조선업계의 수익성 악화를 보전해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박건조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원자재인 후판 가격이 동시에 하락하는 것은 그나마 손실을 보전해줄 것으로 보인다"며 "신규수주가 꽉 막힌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결국 각 조선업체의 생산성과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능력이 수익성을 판가름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