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다시 혼탁으로 흐르는 CEO 인선

권력실세 과도한 영향력… 공모 전 내정… 학교 총동문회까지


학연·지연 총동원 구태 재연… 노조, 곳곳 인사 개입 모습도

관피아 배제, 민간 출신 경쟁… 금도 무너진채 '줄 대기' 난무


인선작업 도리어 퇴행적 진행


요즘 금융계 고위 인사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곳은 권력 실세 A씨와 누가 연결돼 있는지다. 하반기 들어 굵직한 금융계 인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A씨와의 관계에 따라 인선 구도가 뒤바뀌고 있는 탓이다. 실제로 일부 금융사는 인선 작업 자체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고 또 다른 금융사는 A씨의 추천에 공모도 하기 전에 일찌감치 자리가 내정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인사권을 행사해야 할 금융당국자들도 A씨의 눈치만 바라보고 있다.

인사가 이처럼 왜곡되자 한동안 조용하던 정치인 낙하산 인사가 다시 등장하고 힘 있는 정치인과의 연줄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는가 하면 학연과 지연 등을 총동원하는 구태도 여지없이 재연되고 있다. 금융사 곳곳에서 인사에 개입하는 노조의 모습도 속속 목격되고 있다.

세월호 여파에 관피아가 사실상 배제된 후 민간 출신만의 경합이 이뤄지면서 인선작업이 도리어 퇴행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전직 금융당국의 한 수장은 "민간 인사들의 그릇된 행태가 관료 출신보다 오히려 더 한 것 같다"며 "과거에는 그래도 '금도와 룰'이 있었는데 요즘은 무차별적인 경쟁과 줄 대기가 난무하는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인사의 모든 길은 '권력 실세' A씨에게…확대되는 '정치 인사'=지난 10일 사장 후보자 공모를 마감한 SGI서울보증보험. 여기에는 무려 19명의 지원자가 응모했다. 하지만 정작 이곳 사장 자리는 한달여 전부터 '내정설'이 파다했다. B씨가 A 인사와의 연으로 일찌감치 낙점됐으며 청와대의 최종 재가만 남았다는 것이었다. 결국 B씨와 함께 응모한 18명은 헛물만 켜는 것이고 사실상의 '들러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서울보증 노조는 이제 와 "정권의 낙하산 인사 내정설이 사실이라면 사추위가 추천한 신임사장 후보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나섰지만 다른 유력 후보들 역시 정권 실세와 끈을 닿기 위해 애를 닳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다.

대우증권 사장 인선 작업 역시 내정설이 가져온 파행의 극단이다. 7월 김기범 사장의 돌연 사퇴 이후 공모를 거쳐 지난달 말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후임 사장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내정설 등 부작용이 양상되면서 11월로 연기하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도 A씨의 영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주주인 산업은행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했다.


10일 사장 공모 절차를 개시한 주택금융공사 사장도 지난달부터 이미 C씨의 내정설이 나오고 있다. 사장직무 대행을 맡고 있는 한국은행 출신 김재천 부사장과 이윤희 전 IBK캐피탈 사장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실상 이미 낙점돼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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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계속해서 왜곡되면서 금융계 고위 자리를 노리는 정치인들의 '탐욕'도 다시 노골화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10일 임시 주주총회에서 정수경 변호사를 신임 감사로 선임하는 작업을 강행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정 신임 감사가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 순위 41번을 받은 전력이 있고 사실상 금융권 경력이 전무하다.

자리도 만들어지기 전에 지역구 정치인을 등에 업고 보험사 수장 선임을 자신하는 인물까지 등장하고 있다. DGB금융그룹은 올해 중으로 우리아비바생명 인수를 완료할 예정이다. 박인규 DGB금융 회장이 사장직에 외부 출신 선발을 공언한 만큼 벌써부터 일부 인사는 전임 DGB금융 회장 및 지역구 정치인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선임을 자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현재까지 전 NH농협생명 본부장, 전 보험개발원장, 전 우리아비바생명 사장 등이 차기 사장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학연·지연에 노연(勞緣)까지…업무 성과는 의미 없어=KB금융그룹의 차기 회장 선임 건도 시간이 갈수록 혼탁해지고 있다. KB는 김옥찬 전 부행장이 사퇴하면서 '순수 내부 출신'은 사실상 사라졌다.

대신 각종 학연과 지연, 심지어 노조와의 인연까지 등장하면서 인선 작업이 끝나도 적지 않은 잡음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KB금융 회장 후보는 김기홍 전 국민은행 수석부행장, 양승우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회장, 윤종규 전 KB금융 부사장,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 등 7명. KB 안팎 관계자들에 따르면 '명문고' 출신들의 자존심 대결까지 엿보이고 있다. 경기고(하영구·양승우), 서울고(황영기), 경북사대부고(이동걸) 등의 고교 동문회가 총동원돼 동문 출신 후보를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 사외 이사 9명 중 8명이 서울 상대 출신인 탓에 하 행장과 황 전 회장, 양 회장, 지 전 부사장 등이 유리하고 이 중 특정 인물을 밀고 있다는 소리가 나온다.

여기에 TK와 비TK 간 양상도 나타나고 있다. 윤 전 부사장의 경우 성낙조 노조위원장과의 같은 지역(윤 전 부사장:광주상고·성 위원장:광주고)이 도리어 독이 되고 있다.

은행연합회장은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과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이 경합 중이어서 큰 잡음이 없지만 생보협회장은 이수창 전 삼성생명 사장과 고영선 교보생명 부회장과 대형 생보사 최고경영자(CEO) 출신 4~5명이 함께 거론되면서 과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혼탁한 인사 문제로 일부 금융회사는 사실상 내정됐던 인사를 철회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신한생명은 14일 주주총회를 열고 6월 임기가 끝난 정진택 감사를 내년 3월 정기 주총 때까지 유임시킬 예정이다. 당초 금융감독원 국장 출신인 장상용 손해보험협회 부회장이 후임으로 내정됐지만 관피아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현 인사를 더 하게 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내년으로 연기한 이유를 '특정 인사를 염두에 둔 조치'라는 말도 나온다.

인사 왜곡이 '업무 성과'는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이순우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의 경우 연말 임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금융당국 내에서도 "민영화 과정에서 무리 없이 이끌어와 연임하는 것이 낫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권력과의 연줄을 통해 자리를 노리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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