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정책금융 개편으로 정책기관 간 보증이 원칙적으로 금지된 것도 수은의 피해 확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일 금융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모뉴엘에 대한 시중은행의 여신은 총 6,768억원이다. 이 가운데 무보나 신용보증기금 등의 담보가 설정된 여신은 3,860억원. 총 10개 은행 가운데 9개 은행은 상당수의 여신을 무보 등의 보증을 받아 모뉴엘에 제공했다. 기업은행은 총 1,508억원의 여신을 제공해 규모가 가장 크지만 1,055억원은 보증을 받아 신용대출금액은 453억원에 그친다. 산업은행도 1,253억원을 대출해줬으나 이 가운데 754억원을 보증 받았다.
반면 모뉴엘 여신 규모 3위인 수출입은행은 총 1,135억원을 100% 신용대출로만 해줬다. 통상적으로 수은은 수출채권(선하증권 등)에 대해 90%는 보증을 받고 나머지 10%만 신용대출을 해주는 식으로 영업을 해왔다. 모뉴엘에 너무 과도한 신용대출이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무보가 앞으로 보증에 나서게 되면 은행권에서 수은의 피해 규모가 가장 커질 수밖에 없다. 무보 보증서에 대한 신뢰가 훼손될 경우 수출금융 전체가 막힐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일단 은행들에 무보가 보증을 해주도록 한 뒤 무보가 모뉴엘에 구상권을 청구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무보 보증이 이뤄지면 은행들의 피해 규모는 3,000억원 수준으로 낮아지지만 100% 신용대출을 해준 수은은 거액의 피해를 홀로 떠안게 된다.
수은이 이처럼 모뉴엘에 대해 무리한 대출을 해준 것은 지난해 정책금융 개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무보와 수은 등 정책기관 간의 보증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수은 자본금을 늘리고 대외금융기능을 몰아줬다. 수은에 자율성을 크게 부여한 정부정책이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이와 별도로 수은이 모뉴엘을 자체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으로 인증한 뒤 현금흐름조차 제대로 살피지 않고 무담보대출을 늘려왔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수은의 히든 챔피언은 '수출 3억달러 이상이고 세계시장 5위 이내'이거나 '매출 1조원 이상이고 수출 비중이 50% 이상'인 글로벌 중견기업을 가리킨다. 수은이 실적을 늘리기 위해 엉성한 잣대로 히든 챔피언을 만들어놓고 무작위 지원을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2년 히든 챔피언 인증으로 (수은이) 모뉴엘을 '히든 폭탄'으로 만든 건 아닌지 검토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