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경기 하강에도 불구하고 어음 부도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주요 결제수단으로 활용돼온 종이어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종이어음 대신 다양한 어음 대체 결제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예전에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로 처리됐던 기업들이 연체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어음 부도율 0%’ 도 가능해 부도율 통계가 기업들의 체감경기를 반영하지 못하는 ‘죽은 통계’로 전락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종이어음 유통 6년 새 63% 감소=재정경제부ㆍ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어음ㆍ수표 등 이른바 종이어음 유통규모(회전율)가 지난 99년을 피크로 감소하면서 지난해에는 3,500조원 수준까지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종이어음 유통규모는 77년 81조원에 불과했으나 그후 지속적으로 증가, 99년에는 9,677조원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전자결제 수단이 본격 도입되면서 2000년대 들어 종이어음 유통규모는 꾸준히 감소, 지난해 말에는 3,576조원까지 떨어진 상태다. 99년과 비교했을 때 최근 6년 새 종이어음 유통규모는 63% 감소했다. 올해 들어서도 상반기 동안 종이어음 유통금액은 1,906조원 수준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대기업은 종이어음을 거의 쓰지 않고 중소기업도 일부 영세업체 위주로 종이어음을 발행하고 있다”며 “이 같은 발행축소가 유통규모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음 부도율 통계 착시현상=종이어음 유통규모 감소는 어음 부도율과 부도업체의 사상 최저 기록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금거래가 늘어난 것도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다양한 비(非)어음 결제수단 등장으로 돈을 갚지 않아도 ‘부도’가 아닌 ‘연체’로 처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어음 부도율은 95년 0.17%에서 98년 0.38%, 2005년에는 0.04%로 낮아진 후 올 상반기에는 0.02%로 사상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부도업체도 크게 줄었고 대기업 부도업체는 올 들어 단 1개사도 나오지 않았다. 전체 부도업체 수도 90년대 1만개 수준에서 2004년 4,445개, 2005년 3,416개로 줄었다. 올 1~6월에는 1,279개로 집계돼 이런 추세라면 올해 총 부도업체는 2,600여개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당좌거래 업체도 2003년 초 6만6,000여개에서 2003년 말 6만3,400여개로 줄었고 지난해 말에는 5만8,500여개로 감소했다. 조덕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어음 유통이 준다는 것은 거꾸로 결제수단이 선진화되고 있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다”며 “동시에 어음 부도율 통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어음 부도율을 대체할 새로운 통계가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