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긴급진단 금융산업 왜 낙후돼있나] <7·끝> '몰(沒)금융'에 멍드는 금융사

희생 강요하는 금융만능주의 만연… 시장 왜곡않는 수준 요구해야<br>금융은 건전성이 가장 중요 은행이 모든 대출 취급 못해<br>적정 수준의 순익 있어야 사회적 책임 기대할 수 있어


금융감독 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한 국회의원이 "왜 직원이 백 여명 밖에 안 되는 금융지주사들이 은행에서 수천억원의 배당을 받느냐"며 "얼마 안 되는 지주 직원들이 다 성과급 등으로 나눠 갖는 것 아니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지주사가 상장돼 있어 자회사인 은행 같은 곳에서 배당을 받아 주주들에게 배당하거나 내부 유보하는 것인데 금융의 기본조차 모르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사회적 '몰(沒)금융'이 금융산업의 뒷다리를 잡고 있다. 금융을 싫어하는 수준을 넘어 산업자체에 대한 이해 자체가 부족하다 보니 잘못된 정책이나 사실상의 특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금융의 특성상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각종 포퓰리즘적 요구가 정치인들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금융이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금융 만능주의'의 폐해가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객 돈 안전하게 돌려주는 게 은행=은행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고객에게 예금을 받아 이자를 덧붙여 안전하게 돌려주는 일이다. 다른 금융사도 마찬가지다. 채권투자자들에게서 돈을 구해 만기 때 원리금을 갚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사는 마진을 뗀다.

은행은 대부분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예금)으로 장사를 하기 때문에 건전성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별도의 금융감독 조직을 만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중은행은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높고 건전한 기업과 거래한다. 그리고 위험등급이 높은 개인이나 업체는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같은 2금융권을 써야 한다.

금리는 은행에서 2금융권, 대부업으로 갈수록 높아진다. 금융권에도 나름대로의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

그런데도 사회적으로는 2금융권이나 대부업의 고금리를 문제 삼으며 모든 대출을 은행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 넘쳐난다. 최근에는 법정 이자를 연 30%까지 낮춰야 한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이 모든 대출을 취급할 수는 없다. 은행이 신용등급에 관계없이 싼 이자로 모든 계층에 돈을 빌려주면 건전성에 문제가 생긴다.

이는 경제 시스템에 치명적이다.


과거 신용카드 대란이나 저축은행 사태가 대표적이다. 수차례에 걸친 영업정지로 저축은행 후순위채권 보유자와 5,000만원 이상 예금자들이 손실을 봤는데 이는 저축은행에 대한 건전성 감독이 제대로 안 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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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불합리한 부분은 당연히 바꿔야겠지만 신용등급이 높고 낮음과 은행과의 거래 실적에 따라 금리와 대출가능금액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평등 의식이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왜 내가 남들보다 많은 금리를 무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금융의 속성을 무시하면 그에 따른 대가가 크다. 정부가 수수료나 금리에 개입하게 되면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대출공급 자체가 줄어드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대출금리가 인위적으로 낮아지게 되면 위험도가 높은 사람과는 아예 거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의 한 관계자는 "은행 차원에서 대출금리를 한자릿수로 낮추다 보니 일선 지점장들은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아예 피하게 된다"며 "신용이 안 좋은 기업들에는 피해"라고 말했다. 대출 최고금리가 연 49%에서 39%로 줄어드는 과정에서 등록 대부업체 수가 줄면서 이들이 음지(사채시장)로 들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 왜곡 않는 수준에서 요구해야=그럼에도 당국은 은행과 금융사에 사회적 책임을 요구한다. 이는 금융사들이 정부에 빚이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때는 상당수 금융기관들이 공적자금을 수혈 받았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외화지급 보증과 금융시장 안정책 같은 직간접적 도움을 받았다. 금융사들에 금융의 속성을 어느 정도 깨뜨리면서도 대출지원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지적은 받아들이면서도 시장원리를 왜곡하거나 금융사의 체력을 위협하는 정도의 수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6월 말 현재 대출채권이 약 200조원인 국민은행이 대출금리를 평균 1%포인트만 낮춘다고 해도 단순계산으로 2조원의 수익이 날아간다.

은행들이 매년 10조원 안팎의 이익을 낸다고 지적하는 것도 절대 규모만 본 것이지 비율은 못 본 것이다. 개별 은행 자산만 200조원이 넘는 상황이다. 은행권의 최근 총자산순이익률(ROA)은 0.24% 수준에 불과하다. 몸집이 크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버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지키면서 경제성장률 이상으로 대출을 계속 공급하기 위해서는 은행은 적정 수준 이상의 순이익을 반드시 내야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호경기 때는 'ROA 1%'가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은행업 자체의 부진으로 0.5% 밑으로 떨어졌다. 지금도 국내 은행들이 폭리를 취하는 수준은 아닌 것이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단순히 금융사가 돈을 많이 버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본확충에 얼마나 쓰는지를 따져보고 과도한 배당이나 직원 급여로 돈이 나가는지를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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