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나의 일 나의 인생/나춘호 예림당회장] 35.명륜동 첫 사옥 감회

예림당 사옥은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부근에 있다. 지하 3층 지상 5층짜리인 본사는 96년 용답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서울문고 같은 대형서점은 물론 연중 크고 작은 전시회가 많이 열리는 무역센터 옆이다 보니 각종 정보를 편리하게 접할 수 있지만 아늑하고 포근했던 명륜동의 맨 처음 사옥에 비하면 아쉬움도 있다. 83년 구입한 명륜동 사옥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성북동 방면으로 100여m 들어가서 언덕 길 거택 사이에 있었다. 일제시대 지어진 적산가옥으로 대지 220평에 뒤에 덧대어진 공간을 포함하면 건평은 100여평 정도 됐다. 마당에는 잔디가 부드럽게 깔려있고 꽃나무를 비롯해 제법 수령이 있는 나무들이 둘러 있어 야외용 테이블만 두면 담소하기도 좋았다. 바로 앞집도 일반 주택이었는데 대학교재를 내는 `도서출판 문운당`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옆집은 동대문시장에서 원단을 취급하는 거상의 집이었고 그 앞집은 유명한 회사의 회장 댁으로 아침이면 으리으리한 외제 승용차들이 몇 대씩이나 집 앞에 늘어섰다. 그런 속에 폭 파묻히다시피 들어앉은, 시멘트 담장과 초라한 철제 대문 위로 파란 기와 지붕만 보이는 낡은 주택을 사서 사무실과 창고로 쓰게 되었다. 주변 분위기로 보아 더러는 옆집들이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돌이켜 보면 명륜동 시절은 사업적으로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안정되고 즐겁던 시절이었다. 사람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 간절한 기대 하나를 이루면 이 세상 그 무엇도 부럽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이루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곤 하는 것이 사람이다. 새로운 희망과 또 다른 목표를 갖는 것이 결코 나쁘다 할 수는 없지만 작은 것을 만족할 줄 모르면 큰 것도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은 불행이다. 물적인 성취감에 있어서 나에게는 결코 잊지 못할 두 개의 행복한 추억이 있다. 하나는 맨주먹으로 상경해 결혼을 하고 월세를 살다가 전셋집에 들어갔을 때이고 또 하나는 사무실 없이 출판을 시작했다가 세살이 사무실에서 작으나마 사옥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을 때다. 하지만 여유자금이 있어 사옥을 구입한 것은 아니었다. 창업 이후 해마다 책이 늘어나다 보니 좀더 너른 공간이 필요했고 그 때마다 이사를 해야 했다. 81년에는 봉익동에서 전 기독교방송국 옆 효제동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몇 년간 창고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생각했으나 1년 만에 상황은 달라졌다. 몇 층이나 되는 건물에서 일일이 등짐을 져 나르며 무거운 책들을 옮기는 이사는 늘 고역이었다. 언제까지 그 많은 책들과 지형을 옮겨 다녀야 할까 생각하니 끔찍했다. 생각 끝에 무리를 해서라도 자체 건물을 마련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작더라도 내 건물이라면 어느 구석이든 책을 쌓아놓을 공간을 변통하면서 차근차근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문제는 자금이었다. 당장 가진 것이라곤 사무실 임대보증금 2,000만원이 전부였다. 그 돈으로 종로일대에서 건물을 매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다 중심가를 조금 벗어난 곳을 알아보고 다니다 종로구 명륜동 주택가에 1억3,000만원에 나와 있는 집을 보게 되었고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을 보고 무작정 부근에 위치한 상업은행 혜화동 지점을 찾아가 융자 상담을 했다. 그 때까지 나는 은행에서 단 한 번도 융자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담당자가 “담보물은 무엇이냐”고 묻기에 “앞으로 구입해서 담보를 하면 어떠냐”고 대답을 하니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다는 듯이 쳐다보고는 더 이상 상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지점장 면담을 요청했다. 지점장도 처음에는 의례적으로 `검토해 봅시다`라고 했으나 거듭 찾아가 사려고 하는 집과 사무실을 보여 주자 마침내 `오케이`를 얻어내 집을 명도하는 날 설정을 하고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은행융자 5,000만원에 임대보증금 2,000만원, 그리고 일부 책 제작을 유보해 만든 자금으로 사옥을 마련하게 되었다. 출판을 시작한 지 10년 만의 일이다. <문성진기자 hnsj@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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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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