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납세자의 날이다. 납세의 의무는 국방·근로·교육의 의무와 함께 헌법이 정한 국민의 4대 의무다. 공동체와 나라, 복지 증진을 위해 오늘도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2014년도 예산 규모는 335조8,000억원이다. 엄청난 규모의 나라 살림은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국민이 내는 세금을 모아 경제와 복지, 국방, 교육, 사회간접자본(SOC) 등 필요한 예산을 집행한다. 세금이 없다면 나라가 돌아갈 수 없다. 세금은 국가 운영의 혈액과도 같다.
하지만 세금을 많이 내고 싶은 국민은 아무도 없다. 내가 번 돈, 내가 가진 재산의 일부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친구와 같이 마신 술값은 기쁘게 내도 세금 내는 것에는 거부감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고대 이후 세금은 국민에게 가렴주구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왕과 탐관오리가 백성에게 세금을 뜯어가 호위호식한다'는 얘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민에게 호소력이 있다.
지난해 8월 청와대 조원동 경제수석이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게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고 말했다가 국민의 공분을 산 적이 있다. 조 수석의 말실수도 문제지만 '세금은 가렴주구'라는 전통적 인식이 지금도 작동하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세금을 더 요구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은 조세 저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표 없으면 과세 없다'는 원칙이 정립돼 있다. 근대의 이정표였던 미국독립혁명도 당시 미국인들이 식민지 본국이던 영국의 징벌적 과세에 저항한 것(보스턴 차 사건)이 발단이 됐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현대국가는 조세를 법률로 정하는 '조세법률주의'와 시민이면 누구든 조세를 부담한다는 '국민개세(皆稅)주의'를 채택했다.
최근 경제가 침체되고 기업과 국민의 소득이 줄면서 세수도 감소하고 있다. 2013년 기준 국세 세입(예산 대비)은 8조 5,000억원 '펑크' 났을 정도다. 복지 수요는 느는데 나라의 재정은 어려워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소득공제를 축소하고 세무조사를 강화해서 지하경제를 양성화한다는 계획인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국민의 조세 저항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제는 신뢰에 있다. 첫째, 국민 간 조세의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금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 누구는 내고 누구는 안 내는 게 문제다. 조세는 공평하게 부담돼야 한다.
둘째, 정부에 대한 신뢰 문제다. 내 돈이 허투루 쓰인다고 인식돼서는 안 된다. 역대 국세청장이 비리로 감옥에 가는 모습으로 조세행정의 신뢰도를 개선할 수 없다. 세무조사가 정치적 탄압의 수단으로 인식돼서도 안 된다. 국민 간, 국민과 정부 간 신뢰가 쌓인 후에야 국민에게 조세부담률을 올리자고 호소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유층 및 대기업의 조세 선(先)부담, 국세청의 엄정한 독립성과 중립성 확보를 위한 국세청법 제정이 필요하다. 국민개세주의와 조세법률주의를 달성하고 복지재정도 확충할 수 있도록 세법과 조세행정을 개혁하는 데 국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