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을 위해 1년을 산다고 할 정도로 영국인에게 중요한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선물을 사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시민들이 마트 앞에서 긴 줄을 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크리스마스에는 상점들이 문을 닫는다.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2004년 제정된 크리스마스 영업법(Christmas Day Trading Act)에 따르면 매장면적 280㎡ 이상(약 85평)의 상점은 크리스마스에 영업을 할 수 없다. 법을 어길 경우 최고 5만파운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마트 노동자들이 가족들과 더불어 크리스마스를 즐길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이러니 구두쇠 스크루지조차도 크리스마스에는 자기 직원들을 쉬게 하는 것이다.
물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991년 테스코 등 대형마트들이 크리스마스 황금 대목인 12월 첫 주와 넷째 주 일요일에 영업하겠다고 선언했다. 유통 재벌들은 경제가 어렵고 소비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줘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자 시민들과 골목상권을 지키려는 일반 소매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러한 논란을 거쳐 영국은 크리스마스 영업법을 제정해 휴식권을 보장하게 됐다.
이게 단지 영국의 사례일까. 독일·뉴질랜드·호주 등 많은 나라들은 명절 휴무만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하지 않고 법으로 제정해 꼭 쉬게 한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대형마트 433개, 준대규모점포(SSM) 1,417개에 종사하는 수십만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추석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지난 20년 동안 마트 노동자들은 가족과 명절을 보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평균 시급 5,500원에 월 100만원 남짓을 받는 데 그치고 있다.
현행 유통산업발전법에 월 2일 의무휴업을 하도록 명시돼 있지만 추석과 설 명절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마트 노동자에게 명절 휴식권을 돌려줄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제 한국 사회는 스크루지도 놀랄 만큼 이윤만을 앞세우는 유통재벌의 반 인권적 행위에 안녕을 고할 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