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주한미군 공보관 김영규씨 "한미동맹 일조 …자긍심 느껴"


“주한미군에 몸담고 있지만 한국인으로서 한미동맹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 남북 분단의 최전선 판문점과 한ㆍ미 연합훈련장 등을 누비며 31년째 한국과 주한미군의 가교역할을 해오고 있는 주한미군사령부 공보관 김영규(60ㆍ사진)씨.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이 한미연합사령관, 유엔군사령관 등 3개의 직함을 쓰듯이 그 역시 3개 사령부의 공보관을 겸하고 있다. 김 공보관과 지난 1일 창설 50주년을 맞은 주한미군의 인연은 30세 때인 76년에 시작됐다. 연세대 역사학과를 나오고 입대 후 당시 카투사(주한미군에 배속된 한국군 병사)로 차출된 그는 동두천에 있는 미 2사단 공보실에 배속돼 2사단 기관지인 ‘인디언 헤드’ 기자로 활동했다. 당시 미군 병사들과 함께 쓴 국내 혼혈인 문제 등에 대한 기사가 한국 언론에까지 반향을 일으켰고, 덕분에 그는 제대 후 미 2사단 공보실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 85년 용산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로 자리를 옮겼고 이후 환갑을 맞은 올해까지도 주한미군의 대(對) 언론창구 역할을 해 오고 있다. 지난 30년간 1,000번 넘게 마르고 닳도록 판문점을 드나든 만큼 얽힌 기억도 많다. 이등병 시절 도끼만행사건이 발생해 현장을 취재할 땐 ‘죽으러 가는 줄’ 알았다. 89년 임수경씨가 판문점으로 귀환할 당시를 회상하면서는 “실정법을 어겼지만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는 것을 보면서 젊은이들의 통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동맹은 6ㆍ25전쟁을 통해서 맺어진 혈맹의 관계”라며 “가끔은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한미동맹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한ㆍ미 간에 어떤 일이 발생하면 이를 감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며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대처하는 것이 한미관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정년을 넘겼지만 그는 주한미군 측과 계약을 해 앞으로 적어도 5년 이상은 주한미군의 입 역할을 계속 할 예정이다. 은퇴 후엔 자신의 체험담을 책으로 펴낼 꿈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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