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토야마 정부가 정권 교체 뒤 처음으로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정부의 일반 세출이 사상 최대인 53조엔 전후가 될 것으로 파악됐다. 예산 전체 규모를 나타내는 일반 회계 총액도 사상 최대인 92조엔 전후가 될 전망이다. 이 같은 확대재정은 갈수록 심화되는 디플레이션 국면을 탈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읽혀지지만 하토야마 정부가 내건 정책 공약의 후퇴가 불가피해 '정부에 대한 신뢰'가 퇴색될 것으로 보여진다.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은 집권 민주당이 내각에 제출한 18개항의 예산안 중점 요청 사항을 바탕으로 이 같은 규모의 예산안을 마련하기 위한 조정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디플레이션 타개를 위한 각종 부양책과 함께 사회보장 확충 대책이 예산안에 반영되면서 정부 지출 규모가 역대 최대로 치솟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심각한 재정적자와 줄어드는 세수, 총선용 지역밀착형 정책 집행 등으로 민주당 정권의 3대 핵심 복지 공약은 대다수 후퇴를 면치 못했다. 민주당은 전일 중점 18개항을 전달하면서 ▦내년에 폐지하기로 약속했던 휘발유 세금 등의 잠정 세율을 유지하고 ▦일률 지급키로 했던 아동 수당에도 수입 제한을 도입해 달라는 요청을 포함시켰다. 고속도로 무료화는 차량 통행이 많지 않은 곳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해 총선 당시 3대 공약이 사실상 모두 보류됐다. 내년 도입이 예견됐던 환경세는 유보됐다. 아사히신문은 "여당이 스스로 정권 공약을 수정하고 정부에 실현을 강요하는 셈"이라며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 주도로 마련된 요청 사항이 결과적으로 정부의 신뢰도를 크게 손상시켰다"고 평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는 이날 아침까지만 해도 "(잠정세율) 폐지는 국민에 대한 약속으로 마지막 결정은 내가 내릴 것"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오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생각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도 중요하다"며 한 발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 정부는 선진국 중 최대 규모인 정부 적자를 감안해 내년도 국채 발행액을 약 44 조엔 이내로 줄일 것이라는 목표를 내놓은 바 있어 집권 공약의 수정 가능성이 거론돼 왔다. 아사히신문은 또 내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 대책 등을 위해 당이 예산 및 세제 개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 이 같은 예산안 설정의 다른 이유라고 분석했다. 실제 오자와 간사장은 당무뿐 아니라 정책 전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실권자'의 위상이 두드러졌다. 예산안에는 각 지역의 요구가 높았던 고속도로 및 신칸센 정비 등이 이번 예산안에 포함됐다. 이밖에 직업 훈련중인 구직자에게 한 달에 10 만엔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민생대책에 들어갔고, 고등학교 수업료 무료화의 경우 공립은 전액, 사립은 연간 12만 엔까지 정부가 부담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밖에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총리관저에서 국가 안전보장회의를 개최, 내년도 국방 예산안의 증액은 최대한 억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