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1,496만표(득표율 48%)를 얻어 전 국민 절반 가까이의 지지를 받았지만 박근혜 대통령(51.5%)에 100만표 차이로 패배했다.
부산 지역의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 출신인 문 대표가 정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만남때문이었다.
1980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법률사무소를 연 인연으로 평생의 벗이자 동반자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부산에서 인권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던 그는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부산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정치권과 연을 맺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당선 이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을 맡았지만 총선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구를 뿌리치면서 1년만에 청와대 생활을 접었다.
당시 히말라야로 트레킹 여행을 떠났던 그는 노 전 대통령이 탄핵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려 노 대통령을 지원했다. 탄핵이 기각 된 뒤에는 시민사회수석을 맡았으며 민정수석을 거쳐 2007년 3월 비서실장을 담당했다.
그는 검찰이 참여정부를 압박하고 노 전 대통령을 추궁할 때도 변호인사로서 노 전 대통령을 지켰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에는 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 자격으로 장례를 총괄했고 노무현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2011년 자서전 ‘운명’을 통해 정치에 나서게 된 그는 정권교체를 명분으로 19대 총선에 부산 사상 지역구에 출마하며 정치인으로 본격적으로 나섰다.
정치권에서는 문 대표가 당 대표에 도전하고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로 삼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에도 권력 의지가 약하다는 당내 비판에 시달렸지만 당 대표 후보로서 경쟁자들의 공격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등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