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대 역행하는 기업규제책
양금승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총액 규제의 현행틀 유지,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 한도 축소, 계좌추적권의 재도입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아울러 공정위는 대기업 총수 친인척의 지분과 그룹 구조조정본부의 사용내역 공개를 강행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재계의 시각에서 공정위의 이 같은 입장은 대단히 유감이다.
적은 지분을 가진 대기업 총수가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소위 ‘소유지배구조의 왜곡 문제’를 시정하겠다는 공정위의 주장은 논리 자체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정위의 대기업 규제 강화논리가 경제정책의 일관성 측면에서나 현재의 경제현실 등 제반요인을 감안할 때 과연 국내 기업현실에 맞는 합리적인 정책수단인가,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를 반문하고 싶다.
공정위의 대기업 규제 강화시책은 무엇보다 투자활성화와 경제회복을 바라는 국민의 바람과 어긋나 있다. 우리 경제는 지금 난국이다. 지난해 3.1%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80년대 초와 IMF위기 직후를 제외하면 최저수준이고 국내 설비투자 규모는 8년째 답보상태다. 내수는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고유가와 국제 원자재가 상승,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미국의 금리인상 등 최근의 해외발 악재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 휘청거리고 있다.
이 같은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기업투자 확대를 통한 경제활성화뿐이다. 이를 위해 모든 경제주체의 역량이 결집돼야 하는 시점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위는 오히려 ‘경제가 어려울수록 시장개혁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대기업들의 투자분위기를 해치고 있다. 과연 공정위가 경제회생을 바라는 국가기관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무엇보다 소유지배구조 문제에 대한 공정위의 인식 자체가 잘못돼 있다. 현재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는 정부정책에 순응한 결과로 나타난 것인데 이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 묻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며 정부정책의 신뢰성마저 훼손하는 일이다. 게다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정답이 없다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명제가 아닌가.
대기업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계열사를 지배하게 된 것도 70년대 정부의 기업공개정책과 90년대 중반 공정위가 추진한 소유분산정책의 유산이다. 당시 정책취지에서 본다면 현재의 대기업 총수의 낮은 지분구조는 대단히 훌륭한 성과이다. 그런데도 지배구조와 경영성간에 일관성 있는 인과관계를 보여주는 실증적 근거도 없이 공정위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IMF위기 극복과정에서 거의 완벽한 수준이라고 할 만큼 보완됐다. 대기업들은 IMF위기 이후 소위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5+3원칙’에 따라 가혹한 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기업지배구조 개선, 투명한 회계제도 도입,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 등으로 시장의 자율감시기능도 충분히 갖췄다. 공정위도 스스로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에서 기업지배구조의 제도 자체는 미국 수준에 근접하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공정위의 기업정책은 글로벌 경제시대를 역행하는 ‘시대착오’ 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 전체 상장주식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이미 일국 논리가 아닌 글로벌 논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 단지 자산규모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집단의 계열사는 25개 법령에 출자총액 규제 등 50건의 규제가 국내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자산크기는 가장 중요한 기업경영목표의 하나다. 경제전문지 포천은 매년 자산의 크기를 기준으로 ‘글로벌 500대 기업’을 선정하고 있고 전세계 기업들은 여기에 드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우리도 규모가 큰 기업들을 ‘칭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공정위의 ‘낡은’ 대기업 규제제도는 조속히 폐지돼야 마땅하다.
입력시간 : 2004-08-19 1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