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8월대란”설… 신용 기반마저 흔들/신용공황… 각부문별 점검

기아사태는 한보그룹 부도와는 달리 그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까지는 부도유예협약 적용으로 기아사태의 영향이 수면하에 잠복해있지만 이달부터 파급효과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이처럼 수수방관하고 있는 사이에 대한민국의 신인도가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기업과 금융기관 모두가 겪고 있는 심각한 위기상황을 각 부문별로 짚어본다.【편집자주】◎금융권/은행·종금 불실눈덩이 경영난 가중 ◇금융기관 부실화 및 유동성위기 가능성=연이은 대기업들의 몰락으로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이 엄청난 타격을 받은 상황이지만 그중에서도 2금융권은 거의 회복불능에 가까운 상태에 처해있다. 기아그룹에 3조9천여억원의 자금이 묶여있는 종금사의 경우 기아사태이후 두드러지게 위기상황에 봉착해 있다. 특히 종금사들의 신인도추락이 업계의 영업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실정이다. 종금사들의 주요 장기자금조달수단인 종금채를 기관투자가들이 외면, 장기조달에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지난 7월중 종금채 발행실적은 1천억원을 밑돌아 기채조정협의회의 발행허용물량 2천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종금사의 주요 수신기반인 어음관리계좌(CMA) 수신잔액도 7월들어 크게 줄었다. 종금사 CMA잔액은 일시적인 등락은 있었지만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지난해말의 8조2천5백47억원에서 지난달 5일에는 10조1천9백98억원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이후 기아사태 등으로 인해 수신잔액이 급감, 지난달말에는 9조3천7백88억원을 기록했다. 약 한달만에 8천억원 이상이 감소한 것이다. 특히 종금사중에서도 부실기업에의 여신이 많은 업체들의 경우 금융기관들이 이들에 콜자금공급을 꺼려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할부금융, 파이낸스사 등 중소금융기관들의 사정은 종금사보다도 더 심각하다. 주로 채권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이들 여신전문금융기관들은 부실여신이 많은 업체의 경우 채권발행 자체가 어려운 입장이며 금융기관들이 콜자금 공여를 거부하고 있다. 대기업계열이 아닌 소규모 할부금융사와 파이낸스사들은 하루하루 부도위기를 넘기는 실정이다. 은행이라고 반드시 안전한 것만은 아니다. 올들어서 한보를 포함해 5개 대기업에 물린 은행권 여신만해도 12조원. 이는 지난해말 현재 일반은행의 부실여신 2조4천여억원의 5배에 달하는 규모다. 한보 등에 물린 이들 여신이 모두 부실화될 경우 상당수 은행들이 거의 회복불능상태에 빠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보이후 국제투자가들이 국내 은행들을 평가할 때 부실여신규모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일반 개인고객들이 예금할 때 은행의 신인도에 부쩍 민감해진 것도 국내 은행들의 위기상황을 단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김상석 기자> ◎기업/“중기는 물론 대기업체도 불안하다” 기아사태이후 돈이 제대로 돌지않으면서 기업들의 연쇄부도가 눈앞에 닥치고 있다. 특히 이달들어 기아그룹의 5천여개 협력업체들이 무더기로 쓰러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고 있다. 기업들은 요즘 은행대출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올들어서만 수조원대의 부실여신을 새로 떠안게 된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성어음을 갖고 있어도 휴지조각이 되기 일쑤다. 은행 신탁계정만 놓고봐도 7월중 신탁수신은 1조7천3백억원이나 늘었지만 신탁대출은 4천4백억원 증가에 그쳤다. 그나마 신탁대출 증가액의 대부분은 은행들의 가계대출 세일에 힘입은 것이며 기업대출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직접자금 조달수단인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발행에서도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회사채는 기업신용도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이고 금융기관으로부터 회사채 지급보증을 받기도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채권시장에서 3대 그룹게열사 이외의 회사채 거래는 사실상 중단상태다. 중견기업인 T사와 S사는 지난달말 2금융권의 지급보증을 통해 각각 1백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려 했으나 사겠다고 나서는 금융기관이 없어 결국 금리를 1%포인트 가량 높여 겨우 발행했다. CP는 은행신탁을 비롯한 인수기관들의 기피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비공식적으로 지급보증을 해주며 CP발행중개를 해온 종금사들도 이젠 손을 놓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현대, 삼성, LG 등 3대그룹이외에는 어음할인을 받을 수 없을 정도』라는 자료를 내놓았다가 서둘러 할인가능대상 기업을 6∼7개 대기업으로 정정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자금시장 관계자들은 한은의 당초 분석이 정확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자금시장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으로 양극화됐다는 분석은 이제 먼 옛날 얘기다. 재계서열 8위인 기아가 쓰러진 마당에 대기업이라고 다 같은 대기업일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의 자금난은 지방경제에 엄청난 부담을 주고 있다. 수많은 대기업들이 부도나 부도유예로 쓰러지면서 가뜩이나 취약한 지역경제는 자생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 아시아자동차를 젖줄로 하는 광주, 전남지역 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시작되는게 대표적인 예다. 한계상황에 와있는 대기업들도 적지않아 위기의식이 증폭되고 있다. 기업자금시장의 경색은 이달들어 기아 협력업체들의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한층 심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손동영 기자> ◎해외차입/외자도입 먹구름… 유동성위기 증폭 ◇대외신인도 하락 및 해외차입여건 악화=연이은 대형부도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가 바로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차입. 대기업들의 몰락에 따른 국내 경제에의 파장은 어차피 우리 경제내의 각 경제주체들이 나누어 감수해야 할 고통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특히 기존 해외차입금의 만기가 많이 몰려있는 9월에 자칫 외화유동성위기가 닥쳐올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팽배해있는 상황이다. 9월중 외자도입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해외차입을 추진해야 하는데 현재 여건이 원체 나빠 고금리 부담을 감수해야 할 처지다. 지난달 15일 기아그룹이 부도유예대상이 되자 가장 발빠르게 나선 곳이 바로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미국의 S&P사와 무디스사. 지난달 23일 S&P사가 기아에 거액의 여신을 물린 한일, 외환, 제일, 장기신용, 신한은행을 신용등급의 하향조정을 예고하는 「신용감시」대상으로 선정했다. 이어 무디스사도 그동안 국가신인도와 동일한 신용등급을 받아온 산업, 기업, 주택, 수출입은행 등 4개 국책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평가, 신용등급의 하향조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책은행들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조정 움직임은 곧 한국정부의 국제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우려를 낳게 한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신인도 하락은 곧바로 해외차입여건의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뉴욕시장에서 해외 전환사채(CB) 발행을 추진하던 한미은행은 기아사태이후 해외기관투자가들이 당초 발행조건보다 불리한 조건으로 발행할 것을 요구하자 발행을 연기했다. 기아사태이후 변동금리부채권(FRN)을 발행한 하나, 부산, 조흥, 보람은행 등은 당초 발행조건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조기상환청구권을 발행조건에 추가해야 했다. FRN의 만기가 3년이더라도 이 조건이 추가되면 발행 1년이후에 원금상환요구가 있으면 이에 응해야 한다. 자금을 장기로 빌려주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종금사나 리스사들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 지난달 중순께 변동금리부 양도성예금증서(FRCD) 발행을 추진하던 신한, LG종금은 기아사태로 국내외 금융기관들이 참여를 꺼림에 따라 발행을 연기했다. 또 상반기중 연이은 부도로 외화차입을 올 9월께로 연기했던 개발, 한일리스 등 리스업계도 차입시기를 또다시 연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며 한숨이다. 금융기관들은 외화콜시장의 경우 아직은 큰 어려움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한 종금사 임원은 이를 「폭풍전야」의 고요함으로 묘사한다. 대외신인도의 하락은 조만간 국내 은행들의 외화자금사정을 악화시킬 것이고 이는 다시 단기외화차입을 국내 은행에 의존하는 제2금융권으로 불똥이 튈 것이라는 설명이다.<김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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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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