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으로 봐서 무디스가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신용평가기관으로서 자리잡게 된 이유를 그들의 정보수집 능력에서 찾는 견해가 많다.
국제금융계 ‘비밀 중 비밀’로 불리는 스위스 은행들의 준비금 실태까지 꿰차고 해마다 이들의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는 것은 한 예다. 미 중앙정보국 CIA에 버금간다는 정보력 만큼 보안 역시도 유별나다.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이는 신용평가기관 세미나에도 취재진의 출입을 막는 일이 허다하다. 그 관행을 깨고 무디스가 자신의 신용평가방식을 비교적 상세히 대외에 공개한 건 지난 1998년 한국 외환위기 직후, 자사소개 설명회를 통해서다. 무디스에 따르면 기업들의 신용평가방법은 대충 6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먼저 국가신용분석을 시작으로 산업동향분석→경영의 질→동종업계 내의 위치→기업구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채권 구조에 대한 조사 순이다.
기업과는 달리 은행들에 대한 신용평가의 방법으론 이른바 ‘낙타’(CAMEL) 기법이란 게 알려져 있다. CAMEL이란 Capital adequacy(자본 적정성) Asquality(자산 건전성) Management(경영 능력) Earning(수익성) Liquidity(유동성) 등 다섯 개념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다. 미 금융학계에서는 여기에 S(Sensitivity to market risk:시장 위험성에 대한 인지 능력)를 덧붙여 ‘카멜스(CAMELS) 기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저런 방법들을 통해 꽤나 공정하게 진행될 것 같은 신용평가에 대해 그러나 지구촌 국가와 기업들 불만의 목소리가 커진 건 특히 아시아 금융위기이후다. 시기도 놓치고 강도도 적절치 않은 경보음으로 외환위기 뒤의 혼란이 더욱 가중됐다. 불신의 이유는 여러 측면에 걸쳐 있다.
우선 신용평가사들이 정부의 통계 발표, 특히 무역수지 외환 보유고 같은 전형적인 거시 경제 접근법을 채택하는 바람에 급변하는 시장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무엇보다 회사 특히 구성원들의 이해가 관련돼 있다는 것, 더 넓게는 월가 즉 미국의 이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설령 제 아무리 뛰어난 평가의 방법론을 동원한다 해도 결국 공정성에서의 ‘도덕적 해이’의 여지를 남긴다면 어떤 신용 평가도 ‘신용’을 얻을 수 없다.
▦세계화란 틀 내에서 그 힘에 눈치를 보게 되는 신용평가사에 대해 최근 삼성전자가 보인 배짱(?)이 눈길을 끈다. 삼성은 북핵 6자회담 타결 이후 한국의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 절차에 들어간 피치사에 대해 기업신용등급 평가를 받지 않고 평가 의뢰 계획도 아직은 없다고 밝혔다. 국내 기업들의 무더기 등급 상향 조정이 기대되는 상황 속에서다.
삼성 관계자는 비용 문제를 제기하며 모든 신용평가사들로부터 평가를 받아내야 되는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는 분기 수조의 순익을 내는 삼성이 수수료와 관리비 등 10만 달러가 안 되는 비용 문제보다는 해외 차입의 필요성을 못 느끼면서 신용평가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 과거 포항제철 등 우리 간판 기업들이 국제신용평가서 없이 뉴욕 증시에서 전환사채(DR)를 발행하려다 묵살당한 사례를 생각하면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부쩍 큰 키가 일면 뿌듯한 면이 있다.
24일 한덕수 부총리가 미국에서 존 스노 재무장관으로부터 국제통화기금(IMF) 한국 쿼터 지분 확대 지원을 약속 받았다. 아시아권의 발언권을 높여줘야 한다는 로드리고 라토 IMF 총재의 과거에 없던 발언 직후의 일이다. 미국의 ‘용병’ IMF가 변하는 걸까. 또 이 같은 움직임이 달러 자본주의의 ‘기수’ 신용평가사에도 나타나게 될까. 상황이 어디로 가든 우리로선 남의 눈치보지 않아도 될 만큼 힘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국가신용등급에 온통 신경을 쓰다가 대외에 보여주기 위한 헐값 매각 시비 등 무리한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을 해온 우리로서는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