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권노갑 전 고문은 2000년 총선 당시 어떤 위치에 있었나. 또 그는 과연 검찰 주변의 얘기대로 총선에서 많은 자금을 뿌렸을까. 100억원대의 현대 비자금 수수 혐의로 그가 전격체포되면서 새삼 나오는 물음들이다.결론부터 말해 권 전 고문이 지난 총선에서 적잖은 정치자금을 거두고 나눠줬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실제 이를 증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그 돈이 현대에서 나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여권의 상황과 주변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권부(권 전 고문의 애칭)`가 총선 자금에 깊이 연관돼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2000년 총선 당시 권 전 고문은 민주당 공천을 사실상 주도했다. 낙천자들이 `저승사자`의 별명을 붙였을 정도로 물갈이(후보 교체)에 깊숙이 개입했다.
그는 386세대 신인의 수도권 집중 배치, 공천이 위태로웠던 소장 개혁파 의원들의 재공천 등도 관철시켰다. 모두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과 배경이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권 전 고문은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자신이 공천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적잖은 `실탄`을 지원했다는 게 정설이다. 수도권의 386 정치신인 후보들, 경합지의 소장 신인들이 주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영남권에서 당선자를 내기 위해 청와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동진정책`의 핵심 인물들에게도 넉넉하게 후원이 이뤄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부산에서 출마했던 노무현 대통령을 야당이 공격하는 것도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선거 당시 `권부`측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았었다” (수도권 386 후보), “수도권 경합지에 선거 막판 많게는 수억원씩의 현찰이 집중적으로 내려갔고, 권 전 고문과 김옥두 당시 사무총장 라인에서 이를 주도했다”는 등의 얘기가 나온다.
권 전 고문은 총선 이후 이뤄졌던 8ㆍ30 최고위원 경선 과정에서도 몇몇 후보 진영에 도움을 줬다. 김근태 의원은 “경선때 권 전 고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양심고백`을 했었다.
권 전 고문측도 “김 의원 뿐 아니라 여러 후보측에 지원을 했다”고 인정했다. “권 전 고문이 경선에 나가기 위해 준비해 뒀던 돈을 출마를 포기한 뒤 여러 후보 진영에 줬다”는 게 권 전 고문측의 해명. 권 전 고문측은 당시 돈의 출처를 `지인 및 친척의 후원과 부인이 운영하는 가게 수익금`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현대비자금 수수가 사실이라면 권 전 고문은 현대 돈 일부를 경선 자금으로 남겨뒀다가 최고위원 후보들에게 나눠줬다는 가설도 생각할 수 있다.
<신효섭 기자 hsshi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