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강박사의 프랑스어 정복기

강성규 박사는 프랑스 유학이 결정될 때까지 단 한마디의 프랑스말도 할줄 몰랐다. 「봉쥬르」하는 인사말조차 떠나기 한 달전 학원에 다니면서 알았을 정도였다. 38살의 나이도 새로운 말을 배우기에는 적잖은 부담이었다.리용의 그로노블 대학에서 석 달동안 어학연수를 마친 그는 박사과정에 등록하기 위해 릴 대학으로 갔다. 그러나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던 강 박사는 결국 영어를 아는 한 학생의 도움으로 대학 본부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그 여학생은 길을 안내해준 뒤 그를 보며 『도대체 어떻게 공부하려고 하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가장 힘든 것은 강의였다. 姜 박사는 프랑스어로 진행되는 과목은 아예 알아듣기를 포기했다. 대신 동료들에게 노트를 빌렸다. 아이들 학비 보조금을 받으려고 관청에서 서류를 뗄 때도 몇 번이나 실수를 되풀이해야 했다. 어떻게 프랑스어를 정복했을까. 그것도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그는 남들이 말하는 비법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한다. 姜 박사는 속된 말로 「무작정 개겼다」고 비결(?)을 고백한다. 『프랑스어 배우려고 유학을 떠난 게 아니잖아요. 안되면 바디 랭귀지로 하자, 프랑스어 공부할 시간에 전공 공부나 하자, 이런 생각이었습니다.』 姜 박사는 프랑스 사람들하고 이야기하다 말이 안 통하면 그냥 부딪쳐 「개기다가」 정 안되면 「할 수 없지」하고 생각했다. 프랑스어가 안되면 떠듬거리는 영어로, 정 안되면 손짓발짓을 써서 어떻게든 해결했다. 시간을 내서 프랑스어를 따로 공부하는 일은 피했다. 공부 시간이 아까와서였다. 그는 그때를 『내가 물어보고 (알아듣지 못하니까) 내가 대답했다』고 말한다. 姜박사의 「개기기」는 2년쯤 지나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이 말한 것을 50%쯤 알아듣겠더군요.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고 남의 집에도 놀러갔죠.』 박사 학위를 딴 뒤에도 그는 사실 「프랑스어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졸업할 때 한 직원이 姜박사를 뽑고 싶어하는 프랑스 회사가 있다고 알려 왔다. 姜박사는 가고는 싶은데 프랑스어에 자신이 없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돌아가야 했지만 그의 말은 솔직한 심정이기도 했다. 『그 직원이 「당신의 프랑스어는 그만하면 됐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때에야 내가 프랑스어를 제대로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죠.』 강 박사는 「나이가 많아서」,「외국어를 못해서」라며 늦깎이 공부를 주저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지금도 이렇게 말한다. 『저도 했는데 왜 못하겠습니까.』【대전=김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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