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공요금 통제와 저축은행 부실의 여파가 공공기관 부채로 전이됐다. 정부가 떠안아야 할 짐을 공공기관들이 대신하다 보니 공공기관들의 경영환경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2013년 관리대상수지를 흑자로 전환해 균형재정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공공기관들의 부채 문제가 이처럼 심각해지면 정부가 내세우는 균형재정은 허울좋은 치장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통계상 정부의 부채로는 잡히지 않지만 사실상 정부의 부채로 볼 수 있는 숨겨진 빚들은 국가 재정을 위협하고 나아가 국가의 신용도까지 갉아먹을 가능성이 높다. 공공기관의 부채는 이미 국가 부채 수준을 넘어섰으며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공공기관 부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286개 공공기관의 부채는 총 463조5,000억원으로 전년(401조6,000억원)보다 15.4%(61조8000억원)이나 급증했다.
부채규모가 가장 늘어난 곳은 저축은행 부실 해결사로 나섰던 예금보험공사다. 예보의 부채는 지난 2010년 27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40조5,000억원으로 무려 13조3,000억원이 증가했다.
다른 대형 공기업들도 급증했다. 한국전력은 지난해보다 부채가 10조4,000억원이 늘었고 가스공사도 5조7,000억원이 늘었다. 이밖에 철도공사ㆍ도로공사도 부채가 각각 9,000억원 증가했다. 보금자리주택과 세종시 사업을 떠맡은 토지주택공사도 부채 증가율은 다소 낮아지기는 했지만 지난해 기준 부채가 130조5,000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공기관 경영 환경을 보여주는 당기순이익도 급감하고 있다. 공공기관들은 지난해 무려 8조4,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0년 1조4,000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던 예보는 지난해 10조9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한국전력 역시 지난해 3조3,000억원의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이처럼 공공기관들의 부채가 늘어나고 손실이 급증하는 것은 저축은행 부실 등 특이 요인과 함께 정부의 강력한 공공요금 통제가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기준 전기와 가스의 원가 보상율은 각각 87.4%, 87.2%에 그치고 있다. 반면 두바이유 평균 가격은 2010년 78.13달러에서 지난해 105.98달러로 35.6%나 급증해 공공기관들의 경영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공공기관 부실이 심화되자 정부는 올해부터 공공기관의 재무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자산 2조원 이상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중장기(5개년) 재무관리계획을 수립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공공기관의 대규모 사업에 대한 타당성 조사도 강화한다. 외부 전문기관을 통해 공공기관의 500억원 이상 사업에는 사전 타당성 검증을 실시한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대책은 공공기관들의 막대한 부채규모를 고려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식'의 임시 처방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정부가 공공요금을 현실화하고 막대한 국가 사업들을 정리하는 것이 방법이지만 여론과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정부는 이 같은 강력한 부채 구조개선 카드를 꺼내 들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