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20개국(20) 정상회의는 그동안 뚜렷한 이슈를 내보이지 못한 채 정상들의 만남 자체에 만족해야 할 것이라는 냉소적 평가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회의가 다시 국제적인 관심의 무대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주목을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한국이 정성을 들여왔던 글로벌 금융안전망, 개도국 개발이슈 등 기존의 G20 의제는 소멸되는 기운이다. 대신 위안화 절상이나 수퍼엔고 해소를 위한 일본 정부의 개입 등 환율 이슈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의장국인 우리 정부가 분명 논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있음에도 G20의 분위기는 갈수록 이쪽으로 쏠리는 형국이다. G20 서울 정상회의 의제 조율차 프랑스를 방문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G20의 성격이 오픈된 포럼인 만큼 환율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해결방법이나 환율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국가의 환율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G20 회의를 본래의 건전한 논의 장소로 바꾸려 애썼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진화작업에도 세계인의 눈은 이미 G20 정상회의를 환율 전쟁터로 준비하는 조짐이다. ◇11월 서울은 환율전쟁터=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결국 미국이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이번에 G20란 수단을 이용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대중 무역적자에 미 의회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뒤 중국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미 정부는 중국과의 확전을 막기 위해 G20 정상회의에서 담판을 짓겠다고 의회를 진정시키고 나선 모양새다. 지난 6월 캐나다 정상회의에서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위안화 절상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미국의 타깃은 중국이다. 여기에 일본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리지 않겠다는 국제공조를 깨자 환율전쟁의 전선은 확대됐다. ◇흔들리는 G20 의제, 당혹스러운 한국=미ㆍ중ㆍ일의 환율전쟁은 G2O의 의제 자체를 흔들고 있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개도국 개발이슈를 제시하고 있지만 아시아와 비아시아권의 환율전쟁은 자칫 환율정책 공조국 간의 갈등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일본 정부 엔화 개입에 대한 지지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의 위안화 절상세 규합 발언 등은 G20을 환율전쟁을 위한 회의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의 쿼터개혁, 은행건전성 방안 등 최종 합의에 다다른 논의들도 자칫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기다 환율전쟁이 확산될 경우 미ㆍ중ㆍ일이 우리나라에 요구하는 상황도 제각각 틀려 우리 입장에서 어느 편을 들기도 힘든 상황이다. 미국의 경우 원화절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중국과 일본은 미국의 환율 압박에 대항한 정책공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G20 의장국이라는 위치와 미국편도 중국편도 들 수 없는 상황은 우리 정부로 하여금 사면초가에 빠지게 하고 있다. ◇환율 전쟁 진화 가능하나=문제는 과연 G20 의장국인 한국이 환율전쟁을 진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조정자의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조정을 통해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쉽지 않겠지만 서울회의에서 환율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경제는 환율전쟁의 움직임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환율전쟁이 통상보복으로 이어질 경우 세계 교역이 줄고 글로벌 경제가 다시 심각한 침체에 빠져들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이 위안화 절상 등을 양자 문제를 넘어 국제 쟁점화하려고 하지만 거대한 대미 흑자를 얻고 있는 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맞설 것”이라며 “한국 입장에서는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보다 과감하게 환율을 시장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