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특파원 칼럼] 하나마나한 중국포럼

고진갑 <베이징특파원>

요즘 중국에 근무하는 주재원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각종 행사에 참여해달라는 민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특히 무늬만 바꾼 수많은 경제 관련 포럼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이미 비슷한 행사가 줄지어 열리고 있는데다 연사들이 말하는 주제 또한 식상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참여해봐야 별로 얻을 것이 없지만 외면하기가 어렵다. 행사 참여로만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에는 후원 및 참가비용까지도 강제로 떠넘기는 웃지 못할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깊이’보다는 ‘돈’을 우선시 하는 이런 행사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연을 내세워 부탁하는 것이라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신이 지쳐 정작 자신이 맡은 중요한 업무는 뒷전으로 내몰리기 일쑤다. 대부분의 주재원들은 “조용하게 살 수 있었던 지난 2003년 사스(SARSㆍ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시절이 그립다”고 푸념조로 말한다. 얼마나 힘들면 ‘지옥’이나 다름없었던 그 시절을 회상할까. 이런 행사들이 중국에서 남발되는 것은 중국측에 돈만 주면 쉽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행사를 주로 주관하는 중국계 기획사들은 “돈만 가져오면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주겠다”며 행사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 일부 그릇된 단체의 과시형 행사가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모 경제 포럼에 참석했던 한 주재원은 “쓸데없는 소모전을 치르는 것 같다. 포장만 그럴듯한 이런 포럼을 비싼 돈 들여 중국에서 할 필요가 있느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물론 모든 행사가 비판받는 것은 아니다. 정말 필요한 행사도 많다. 비즈니스와 연관이 있고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행사도 있다. 이런 행사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기꺼이 참여할 만한 유익한 프로그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리 많지 않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말이 있듯 일부 몰지각한 단체가 자신의 잇속을 차리기 위해 남발하는 행사가 대부분이다. 이는 국가적인 낭비다. 만약 하나마나 한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 곳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만둬야 한다. 기존에 계획돼 있는 포럼도 옥석을 가려야 한다. 제시하는 정책대안도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안일하게 행사준비를 해놓고 “한중 협력에 기여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한다면 중국과 중국주재원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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