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 포르노를 좋아했던 마흔 살의 한 남자가 의붓딸에게 들켜 재활센터로 보내졌고 거기서도 직원들과 환자들에게 성적인 요구를 하다 쫓겨나 결국 실형을 선고 받는다. 실형 선고 전날 저녁, 그는 심한 두통을 앓아 병원에 실려갔고 병원에서는 그의 전전두피질에서 종양을 발견했다. 욕망과 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일을 담당하는 바로 그 부위였다. (본문 26∼27쪽)
다른 사람이 주먹으로 맞는 장면을 보면 왜 저도 모르게 움찔하는 걸까? '미러터치 공감각'(mirror-touch synesthesia)이라는 질환을 앓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진짜로 느낀다. 자신과 타인을 구별할 때 쓰이는'전측뇌섬엽'이라는 부위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본문 123∼126쪽)
전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현재 영국 브리스틀대학에서 사회발달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자아'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닌 뇌와 환경적 요인에 의해 흩어질 수 있는'가변적인 것'이라 말한다. 평소 선량한 사람이라도 돌변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뇌의 작용에 의해 얼마든지 다변화할 수 있는 자아의 허술한 속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뇌의 내적인 변화와 마찬가지로 외부의 영향으로도 우리의 자아가 시시각각 변한다고 말한다. 20여 년 전 발달심리학자로서 어린이들의 시각발달을 연구했던 저자는 아기들의 눈을 통해서 아기의 뇌를 들여다보는 연구를 진행한다. 얼마나 오래 보는지를 보면 아기의 뇌가 무엇을 주목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 물론 무의식적으로 눈을 움직이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들은 대부분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것부터 바라본다. 이는 바깥세상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결정이 된다는 얘기다. 즉 우리가 경험하고 느낀 것, 어린 시절의 기억, 가족, 일, 친구, 취미 등 여러 요소들은 뇌에 흔적을 남기고 패턴을 만들어낸다.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다발 이론'(bundle theory)에 기초해 "자아가 하나의 존재라 생각하는 것은 곧 '착각'"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는 저자는 사고와 행동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뇌에 있으며, 자아란 결국 뇌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묻지마 범죄'의 근본적 이유를 뇌 과학적인 원리와 발달심리학 등의 구체적인 논거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음은 물론 평소 자신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타인의 입장 등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데 적잖은 도움이 될 책이다. 1만 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