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을 새로 넘긴지 얼마 안되는 지난 1월, 예상을 뒤엎는 인사가 하나 나왔다. 새로 발족하는 금융회사의 장으로 재무부 1급 출신이자, 은행 부장을 지내다 임원에 오른지 얼마 안 되는 인물이 뽑힌 것. 얼마 안 지나 기획예산처의 핵심 국장이 그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예전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금융회사의 노른 자위는 경제부처 출신 공무원들로 채워지고 나머지 밑자리도 정부과 여당이 내려보낸 인사로 뒤덮여졌었다. 이른 바 낙하산 인사다. 민간 우선, 그것도 커리어가 떨어지는 민간출신이 공무원을 누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런 일이 다반사 일어난다.
노무현 정권, 참여정부의 공업 정책에서 가장 뚜렷하게 감지되는 것이 바로 낙하산 인사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군출신이 독점하던 자리에 민간인 채용이 늘고 있다. 개 정부투자기관 가운데 현 정부에서 새로 임명한 기관장은 한준호 한국전력 사장, 김지엽 석탄공사 사장, 김진 주택공사 사장, 손학래 도로공사 사장, 안종운 농업기반공사 사장, 류건 관광공사 사장, 오영교 KOTRA 사장 등 7명이다.
전원이 전문가 또는 관료 출신이다. 군 출신은 한명도 없다. 업무와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 낙하산으로 내려오거나 공개 모집이 요식행위였던 시절은 옛날 얘기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공기업 사장 인사에서 가장 큰 성과는 낙하산 중심에서 공모 중심으로 바꿔 놓은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공모제를 통해 공기업의 최고경영자 ( CEO )를 뽑는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며 전문성이 떨어지는 군 출신 인사들이 기용되는 경우가 적어지고 인사배치를 '적재적소'원칙에 따른 결과 전문관료 출신의 중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참여정부 들어 새로 임용된 공기업 경영자들의 경력을 보면 공무원 출신이 4명으로 가장 많았다.
추경예산에만 의존하던 재정집행에 공기업의 일정 부문을 맡는 등 공기업의 공적기능이 점점 더 중요시 되고 국가 정책 목표와 공기업의 역할이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점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이 모두 차관급이라는 점도 주목된다.공기업에서 시장원리, 경쟁을 체험한 후 다시 관직으로 돌아가는 경우를 예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머지 3명의 출신은 민간기업 출신 2명에 자체 승진 1명이다. 과거 같으면 여당 또는 전역 장성의 몫이 여러 방면으로 다양화했다고 정리된다. 공모제와 함께 공기업 인사의 틀을 바꾼 것은 '균형'의 원칙. 정 수석은 이를 "영역간 · 지역간 성별간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라고 설명한 적 있다.
기관장들의 출신 지역이 전남이 3명, 충남, 서울, 울산, 경북이 각각 1명씩이며 출신학교 분포도 서울대 출신 3명에 고려대, 연세대, 조선대, 미국 남가주대 1명씩 등으로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 균형이 고려된 흔적이 엿보인다. 관심사는 공기업 여성 CEO의 등장 여부.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균형을 중시하는 경향을 지닌 참여정부는 전문가 그룹에서 여성을 발탁, 공기업 경영을 맡길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처음부터 적은 규모의 '인재 풀'에서 시작해 보다 광범위한 인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은 지적사항으로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적재적소와 투명성, 윤리경영, 균형을 중시했지만 여전히 갈길이 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