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보이지 않는 대통령

필자는 정치를 교통정리에 비유하고 싶다. 정치란 교통정리와 닮은 점이 많기 때문이다. 도로에서는 버스ㆍ트럭ㆍ승용차가 서로 빨리 달리려 한다. 사회에서는 기업ㆍ노동ㆍ복지ㆍ과학기술이 서로 빨리 달리려 한다. 차량들이 골고루 잘 달리도록 하는 것이 교통의 요체라면 사회 각 분야가 골고루 발전하도록 만드는 것은 정치의 요체다. 도로에 차량이 뒤엉켜 있을 때는 어느 차량도 나갈 수가 없다. 이럴 때는 교통순경이 있어야 한다. 교통순경은 뒤엉킨 차량을 풀고 한쪽을 비우고 차례차례 차량들을 운행시킨다. 혼잡이 어느 정도 풀린 다음에는 신호등을 설치해야 한다. 차량들은 신호등에 맞춰 빨간 불이면 스톱, 파란 불이면 달린다. 정치는 교통정리와 같아 교통순경이 신호등을 설치하는 것은 정치인이 법률을 만드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국민이 해도 되는 것, 할 수 없는 것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법률에 따라 경제 활동을 하고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교통신호가 잘 지켜지면 교통순경이 없어도 되듯이 법률이 잘 지켜지면 검찰ㆍ경찰은 없어도 된다. 교통신호를 위반하면 면허정지 또는 범칙금을 부과하듯이 법률을 위반하면 감옥에 가거나 벌금을 내야 한다. 길이 넓은 곳에는 차선을 그려야 한다. 절대로 침범하면 안되는 중앙선은 노란색으로, 1차선ㆍ2차선은 흰색으로 그린다. 보행자를 위한 횡단보도도 빼놓을 수 없다. 도로의 차선은 사회의 제도에 비유할 수 있다. 정치는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어 국민이 편하게 활동하도록 돕기도 하고 노인과 부녀자ㆍ장애인 등 약한 사람을 보호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 버스전용차로도 만들어야 한다. 서민들이 더 빠르고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또는 승용차 사용을 억제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하는 파란색 차선이다. 이것은 각종 정책에 비유할 수 있다. 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또는 국가정책상의 필요에 따른 정책 등이 그것이다. 교통순경이 신호등과 차선을 활용해서 모든 차량이 골고루 빠르게 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같이 정치는 법률과 제도와 정책을 통해서 사회 각 분야가 골고루 발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교통의 흐름을 보면 교통순경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 각 분야의 발전을 살펴보면 정치인의 능력을 알 수가 있다. 도로교통에 빗대어서 역대 정부를 평가해보자. 박정희 정부는 화물트럭의 일방통행을 보장한 반면 승용차는 억제했다고 비유할 수 있다. 기업을 지원해 경제발전은 크게 이뤘지만 정치적 민주화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승용차 타는 사람들은 ‘세금은 우리가 더 많이 내는데 왜 화물차에만 특혜를 주느냐’고 항의하게 되고 결국 교통순경을 바꾸자는 주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김영삼 정부는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승용차는 신나게 달린 반면에 화물차는 운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 민주화에서는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기업들은 많은 어려움을 안게 되고, 결국 경제 위기로 치달은 것이다. 조화로운 사회 구현이 요체 노무현 정부를 교통에 비유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차량들은 뒤엉켜 있는데 교통순경은 엉뚱한 곳에서 열심히 수신호를 하고 있다고 평가되지 않을까.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코드 정치와 ‘과거사 뒤집기’ 등에 몰두하고 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임명도 마찬가지다. 정치권과 국민이 모두 우려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이미 ‘전문성ㆍ일관성ㆍ개혁성의 어느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지 않은가. 교통 흐름이 순조로운 도로에는 교통순경이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 흐름이 순조로운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우리는 이런 대통령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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