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에 “시멘트왕국 건설” 신화/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투자전략 승부/중국·말련 등에 분쇄·레미콘 생산공장 자회사 설립/주문밀려도 “공급 척척” 신뢰… 32배 투자이익 결실세계에서 가장 화물량이 많은 항구의 하나인 싱가포르항. 그 남서쪽에 자리한 주롱공단은 싱가포르내에서 가장 큰 공업단지다. 무역,금융, 관광 등 서비스업의 천국으로 알려진 싱가포르에서 주롱공단은 그3차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단지다. 주롱공단의 중심부에 촘촘한 아열대 수풀사이를 뚫고 30m 높이의 쌍둥이모양 사일로가 반짝인다.
주롱공단 17파이어니어 크레센트 지역에 1공장 9천평, 자회사가 입주한 2공장 2천3백평등 1만1천3백평 규모의 쌍용시멘트(싱가포르)사다. 해외에서 도입한 클링커(시멘트 원자재)를 분쇄해 시멘트로 가공, 포장또는 벌크시멘트를 생산하는 시멘트가공 업체다. 클링커를 분쇄하면서 내는 절제된 파열음, 공장 정문옆에 「SSANGYONG」마크가 선명한 레미콘차량들이 하루 종일 이 회사를 감싸고 있다.
연간 1백만톤의 시멘트를 가공, 생산하는 이 회사는 법인설립 21년만인 지난 94년에 처음으로 1천68억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매출 1천억원에 세전 순이익도 2백억원 이상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 최근 몇년전부터 5개 현지 자회사를 통해 ▲레미콘, 방화제, 방수제 등 건자재사업 ▲OA기기, 컴퓨터, 정보통신 주변기기등 하이테크사업 ▲창업투자 지원사업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 그룹의 면모를 갖춰가고 이다. 해외자회사로는 지난 7월 가동에 들어간 시멘트분쇄공장을 비롯, 상해에 3개의 공장과 상숙, 북경지역에 레미콘 플랜트를 각각 1개씩 운영하고 있다. 또 말레이지아와 미얀마에도 각각 지난 95년부터 건축자재와 레미콘 생산공장을 두고 있다.
이같은 성장에 따라 이 지역 6개의 시멘트생산회사를 지명도나 기술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이 회사 이인영 부사장은 『계열사 수만 아니라 투자회수면에서도 국내기업 가운데 모범적인 세계화 사례가 될 것』이라며 자신한다.
초기 투자액 2백만달러와 비교할 때 이 회사는 그동안 1천만달러의 투자배당금을 회수, 본사로 송급했다. 또 증자를 통해 7백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1천7백만달러의 투자 회수액과 함께 현재 보유주식가치 4천8백만달러를 합치면 투자액에 비해 32.5배나 되는 6천5백만달러의 투자이익을 실현한 것이다. 투자한지 23년만의 성과다.
이같은 외적 수치로 평가할 수 없는 무형의 성과도 적지않다. 쌍용양회가 이 회사에 지난해까지 총 5백50만톤의 클링커를 수출하는 효과를 거둔 것은 아주 사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이부사장은 『쌍용건설이 동남아지역에서 단연 최고의 건설업체로 발돋움한데는 이 회사가 시멘트를 안정적으로 공급한 것이 크게 주효했다』고 자부한다. 쌍용건설이 싱가포르 최고층 빌딩인 73층의 레플즈 시티를 수주하자 싱가포르 정부는 쌍용이 이 빌딩건설에 필요한 시멘트등 건자재를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지 불안해 했다. 싱가포르는 건설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수년마다 한번씩 시멘트파동를 겪는등 시멘트확보문제가 건설업체들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쌍용은 바로 이 공장으로부터 시멘트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 초대형 건축물을 차질없이 마무리, 싱가포르 정부로 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았다. 지역주민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심었다. 레플즈시티의 완공은 쌍용이 싱가포르 뿐 아니라 동남아지역 전체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됐다.
이 회사는 지난 73년 11월, 국내에서는 제조업의 해외진출이 생소하던 시기에 쌍용의 첫 해외투자로 2백만달러를 투자, 현지의 아프로아시아 쉬핑사, 싱가포르개발은행 등과 합작으로 설립됐다. 쌍용지분은 40%. 75년 2월 공장건설에 들어가 다음에 10월 쌍용양회의 첫 해외시멘트 분쇄공장을 건설, 가동에 들어갔다. 현재 쌍용측의 지분은 주식공개를 통해 초기보다 15%가량 줄어든 25.75%다.
진출초기만 해도 이같은 성과를 예상치 못했다. 지난 70년 동해공장이 연 5백60만톤 규모로 증설되자 쌍용은 일시적인 내수초과물량 해소를 위해 안정적인 해외수출시장 확보가 필요했다. 당시 일부 개발도상국이 클링커 생신 및 분쇄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어 해외이 직접 투자하는 능동적인 해외투자전략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따라 동남아지역 진출을 적극 모색했다. 싱가포르가 선택된 것은 이 지역이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이 전혀 나지않는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부사장은 『반면 싱가포르는 석회석이 전혀 없기 때문에 시멘트 원료를 한국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고 판단, 투자적지로 선택했다』고 밝혔다. 또 이 지역이 지속적인 주택건설과 도시개발계획으로 시멘트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데다 동남아지역의 교통, 무역, 금융의 중심지로 부상함에 따라 동남아시장 진출의 거점기지를 확보한다는 의미도 컸다.
하지만 사업초기 5년간은 바닥세의 건설경기 때문에 투자 실패사례로 평가될 정도였다. 합작파트너인 아프로아시아측은 갖고있던 모든 자금을 이 사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사업이 부진하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고, 쌍용측은 2백만달러를 해외투자 수업료로 날렸다고 말했을 정도. 특히 사업초기에 어려움이 이어지자 해외투자를 승인한 한국은행측은 수년간 과실송금이 없자 쌍용측에 「외환을 해외로 빼돌린 것이 아니냐」며 의혹을 표시하기도 했다.
고전을 딛고 일어선 것은 83년. 때마침 터진 건설경기덕에 9천3백만달러가량(8백3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투자자금을 완전 회수하면서 정상궤도에 진입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사우디라아비아의 ABT사가 진출, 물량공세와 함께 가격경쟁을 벌이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91년부터는 다시 정상을 회복, 83년수준 이상의 매출과 이익을 기록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성장에는 단기적인 실적에 집착하지 않고 철저한 현지화경영을 통한 세계화전략이 주효했다. 현지화전략은 이 회사의 이사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모두 7명의 이사 가운데 쌍용측이 김기호 양회사장과 이부사장(본사직급은 이사)등 3명, 아프로아시아측이 2명, 싱가포르개발은행측이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사로는 이부사장과 함께 기술담당인 이시홍 차장등 2명만 상주하고 있고, 이부사장은 5개의 해외자회사 대표이사와 이 회사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이차장은 지난해 7월 가동에 들어간 30만톤짜리 시멘트밀의 건설을 감독했고 새로 추진하고 있는 벌크터미널건설을 지도하고 있다. 대신 대부분 일상적인 경영활동일체를 회장등 현지출신 경영진이 수행, 현지정부의 세제혜택등 각종 인센티브를 따내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이 회사는 오는 2004년 이 지역을 떠나야한다. 분쇄공장을 해외로 이전토록 한 싱가포르정부의 조치와 함께 부지임대기간이 2004년으로 만료되기 때문이다. 그 대책의 하나로 쌍용은 2년전 부터 시멘트밀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공사를 총괄감독하고 있는 이차장은 『앞으로 이 회사는 분쇄공장에서 시멘트를 가공하는 제조업체에서 시멘트를 수입, 판매하는 트레이딩 회사로 변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쌍용은 남은 기간동안 중국 등 인근지역으로 이 회사의 시설을 이전, 싱가포르에서 쌓은 명성이상으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인터뷰/이인영 쌍용시멘트 싱가포르공장 부사장/“균열없는 제품 우수성 인정… 현지정부 댐공사 등 자재이용 법제화까지”
『한국 본사인 쌍용양회의 기술적 도움을 받아 특수시멘트와 각종 건자재를 다른 업체보다 먼저 개발, 시장을 확보한 것이 주효했다.』
쌍용양회의 싱가포르 합작회사를 이끌고 있은 이인영 부사장은 국내기업이 세계화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앞선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싱가포르 정부는 쌍용이 슬러그를 이용, 저열시멘트를 개발하자 정부가 압장서서 이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 댐 등 주요공사의 기초공사에 저열시멘트 이용을 법제화했다. 이에따라 이 회사는 새로운 수요를 창출, 수익성 증대와 함께 건설기술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생과정에서 발열량이 적어 크랙(균열)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저열시멘트가 구조물의 안전도를 높이는데 일조했다는 것.
물론 이같은 기술선점 전략만으로 현지에 뿌리내리기는 어렵다.
이부사장은 『쌍용이 현지업체와 합작했지만 이 회사를 「한국적인 기업」이 아니라 싱가포르 현지기업으로 봐달라』고 당부한다. 국적이 분명하기보다는 현지화한 기업이나 「무국적 기업」으로 해석해달라는 것이다.
새로 연간 30만톤 짜리 분쇄밀을 건설할때 이같은 현지화전략은 아주 유효했다. 이부사장은 현지기업이라는 이점을 적극 활용해 현지정부로 부터 세제상의 혜택 등 각종 인센티브를 따내 건설비의 30%를 지원받았다. 만일 싱가포르 정부가 이 회사를 외국투자기업이라고 판단했다면 이같은 혜택을 누릴 수도 없었다는게 그가 겪은 현지화전략의 위력이다.
그는 『현지화는 단지 현지시장을 효율적으로 파고들기 위한 전략으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단지 시장공략을 위해 현지 인력을 고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가는 외국정부로 부터 자국의 부를 빼앗아가는 경제동물 취급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현지에서 론(금융)을 일으켜 자본을 참여하고 현지 인력을 활용, 현지 법률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며 이에 따른 수익만큼을 세금으로 내는 현지업체와 똑같아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현지화』라고 그는 밝혔다. 이같은 현지화가 시장확보 뿐만 아니라 우수한 인재를 유치, 사업을 확장하고 현지정부로 부터 인센티브를 따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부사장은 『따라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진출 성공여부는 바로 현지화 성공여부에 달려있다』 고 강조한다.<싱가포르=문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