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서 역사는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보고(寶庫)다. 최근 출판가를 뜨겁게 달구는 '팩션(Fact+Fiction)'은 이 같은 문학과 역사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빈약한 역사적 기록을 씨줄 삼아 작가의 상상력을 날줄로 덧대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당면 과제를 되짚는다. 이는 팩션의 가장 큰 특징으로 기록만을 충실히 따르는 과거의 역사소설 대신 팩션을 뉴에이지 역사소설이라고 구분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김훈 씨의 '남한산성'에 이어 신경숙 씨의 '리진'이 출간 한 달여 만에 5만질(10만권)이 팔려나가면서 팩션이 주도하는 최근 문학계의 트렌드를 실감케 하고 있다. 100여년 전 조선말 관기 출신의 궁녀 리진이 조선에 파견된 프랑스 대리 공사 폴랭 드 플랑시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서구 근대 문화와 앞선 지식을 접하고 신여성이 됐으나, 신체적ㆍ정신적 열등감에 시달려 결국 조선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정식 결혼을 하지 못한 그는 관기 출신이라는 신분의 벽 앞에서 결국 허물어지고 만다.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조선의 무희가 프랑스와 조선을 오가면서 겪었던 격랑의 삶에는 '20대 여성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가 담겨있다. 그래서 남한산성이 진지한 40~50대 남성의 눈길을 끈다면 리진은 독립적인 20~30대 여성 독자가 많다. 책은 드라마틱하면서도 역사적인 서사를 대폭 강화해 처연하면서도 섬세한 문체 위주였던 '신경숙 풍'의 소설에 반전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꺼져가는 조선말 한양 경복궁과 첨단을 달리는 파리 샹제리제궁을 넘나들며 스물두살의 처녀 리진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속도감 넘치게 끌고 나간다. 특히 6년간 두 차례 파리를 방문, 리진과 관련된 역사적 기록을 추적해 온 저자의 치밀함이 탄탄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됐다. 여기다 출판사의 마케팅도 책 판매를 거든다. 2차례의 사인회와 독자와의 대화, 전국 투어형식으로 열리는 특강 그리고 예스24와 한국관광공사가 함께하는 문화답사 등 다양한 이벤트로 독자들의 흥미에 불을 붙인다.